<워홀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워홀은 리히텐슈타인과 충돌하는 게 싫어
워홀은 리히텐슈타인과 충돌하는 게 싫어서였는지 아니면 두려워서였는지 더 이상 만화를 그리지 않고 음식물에 관한 것들을 그렸다.
그런데 이제 올덴버그가 음식물을 주제로 조각을 시작하자 자신의 식당영업이 위태롭게 느껴졌다.
게다가 로젠퀴스트까지 스파게티를 확대하여 그리지 않는가!
워홀은 식당을 폐업하고 다른 사업을 벌어야만 했다.
자신의 그림이 다른 예술가들의 것과 다르기를 바란 워홀은 구성과 기교에 특히 관심을 기울였다.
그래서 그는 바둑판처럼 그리는 방법을 선호했는데 뉴욕에는 그렇게 그리는 예술가가 없었기 때문이다.
같은 이미지를 조금만 변형시켜 가로세로 격자모양으로 50개, 100개, 또는 200개를 한꺼번에 그렸다.
우표도 50장, 100장씩 전지에 그리면서 그림의 일부분이 흐리게 나타나도록 색을 칠했고 글씨는 쓰다만 듯 미완성으로 남겼다.
달러 지폐도 여러 장 그렸는데 한없이 계속되는 그의 그림은 앞뒤가 없는 전차처럼 시작도 끝도 없이 진행되었다.
워홀이 조수 글럭에게 실제 달러 지폐를 실크스크린으로 대량생산하고 싶다고 말하자 글럭은 드로잉만 그려주면 자신이 제작하겠다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1962년 4월 말 1달러짜리 지폐 200장을 그린 가장 큰 실크스크린이 제작되어 그해 5월 11일자 주간지 《타임》에 소개된 워홀 사진의 배경으로 나타났다.
지폐를 그린 예술가가 워홀이 처음은 아니다.
19세기 말 윌리엄 하넷과 존 하벌이 지폐를 그린 적이 있다. 우표그림도 마찬가지인데 피카소가 콜라주 작품을 하면서 우표를 사용한 적이 있으며, 슈비터즈를 비롯한 예술가들의 콜라주 작품에서도 우표를 발견할 수 있다.
하넷이나 하벌과 마찬가지로 워홀도 거의 2차원의 사물을 선택하여 관람자들로 하여금 그림과 실제를 혼동케 하는 작업을 했다.
워홀의 이러한 미학은 존스의 〈국기〉, 〈과녁판〉, 〈숫자판〉과 다르지 않다.
이 시기에 워홀은 상업적 가치가 없는 이미지, 즉 글자를 실크스크린으로 제작했는데 〈조심해서 다룰 것 ― 유리 ― 고맙습니다〉가 그것이다.
부서지기 쉬운 물건을 포장할 때 취급주의를 표시하는 문구를 153번 반복해서 그린 그림이다.
그림에 실제로 유리는 없지만 ‘유리’라는 글자가 쓰여 있어 마치 그림이 부재하는 것에 대한 표기라는 주장을 하는 듯했다.
2년 후 존스가 글자를 그림에 삽입했을 때 사람들은 존스가 워홀의 그림으로부터 아이디어를 구했다고 생각했다.
1962년 봄부터 예술품 중개상과 수집가들이 워홀의 화실을 드나들며 그의 그림을 구입하기 시작했지만 그렇게 해서 벌어들이는 돈은 넉넉한 편이 아니었으며 수입은 대부분 상업미술로부터 들어왔다.
중개상들이 그의 그림을 그룹전에 포함시켰지만 뉴욕에는 아직 그의 개인전을 계획하는 용기 있는 중개상이 없었다.
4월 어느 날 마사 잭슨이 그의 화실로 와서 그림을 몇 점 구입하면서 개인전에 관해 의견을 나누었으므로 워홀은 은근히 그녀에게 기대를 걸었지만 잭슨이 계획을 포기했으므로 또 한 번 실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