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클래스 올덴버그의 조각은 잠재의식을


회화에서 라우센버그와 존스가 널리 알려질 무렵 조각에서 클래스 올덴버그의 위상은 대단했다.
프로이트의 이론에 심취해 있던 올덴버그의 조각은 잠재의식을 구현한 것이었다.
그는 “자연의 형태가 기하학적으로 분석될 수 있다면 내용은 애욕적으로 분석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나는 마티스나 희망적인 예술을 추구한 사람들보다는 고야, 루오, 부분적으로 뒤비페, 베이컨, 그리고 인본주의적이며 실존주의적인 예술가들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그는 손목시계, 파이 한 조각, 모자, 바지, 치마, 깃발, 음료수 등을 실제처럼 단순한 형태로 제작한 후 색을 칠했다.
사람들은 그의 조각을 좋아했지만 막상 돈을 주고 사는 것은 꺼렸다.

워홀은 107 이스트 2번가에 있는 상점을 세내어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는 올덴버그를 종종 방문하곤 했다.
화실 안으로 들어서면 석고로 만든 옷, 음식, 구두, 바지, 케이크와 파이가 여기저기 널려 있어 마치 백화점에라도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1961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열린 올덴버그의 개인전에서 그의 팝 이미지 조각은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주었고 평론가들은 호평했다.
그의 전람회를 관람한 워홀은 혀를 내두르면서 “대단하다! 대단하다!”고 연신 감탄했다.

워홀보다 한 살 많은 올덴버그는 우리가 매일 대하는 물질을 확대하여 새삼스럽게 그것을 볼 수 있도록 한 예술가였으며 사람들은 그러한 관람을 즐거워했다.
그는 상점 같은 작업실에서 열정적으로 작업에만 몰두했고 술을 마시면 해괴한 행위를 서슴치 않는 등 에너지를 끊임없이 분출하는 그러한 사내였다.
처음에는 추상표현주의를 받아들였지만 1959년부터 새로운 품종 팝아트에 관심을 가지면서 팝 이미지를 확대 재현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그는 캐프로 등을 만나 해프닝에 참여하기도 했고 즉흥적인 표현주의 방법으로 액션 페인팅하기도 했다.
1960년부터는 석고를 사용하여 음식물을 제작하기 시작했는데 그의 조각들은 마치 식당의 메뉴판처럼 보였다.
신문을 밀가루반죽에 개어 부서지기 쉬운 형태로 조각하는 그의 작업과정을 보면서 워홀은 그의 재능을 알 수 있었다.

올덴버그는 도시인생의 외설적이면서 공포감을 주는 〈거리〉(그림 78)를 두 점으로 제작하여 저드슨 교회의 화랑과 루벤(Reuben) 화랑에서 각각 소개했다.
〈거리〉는 루이 페르낭 셀린느의 절망적인 소설 《할부로 구입한 죽음》에서 주제를 구한 것으로 훌륭한 환경예술 작품이다.
그 후 좀 더 희망이 있는 밝은 작품 〈상점〉(그림 76)을 제작했는데 실제 상점을 환경으로 재현한 것으로 이때부터 평론가들은 그가 팝아트 조각의 대가가 될 것임을 예견했으며 그로 인해 환경예술은 더욱 신장될 수 있었다.

상점을 작업실로 사용한 후 그는 수입이 넉넉하지 않아 285달러의 적자를 보았는데 다행히도 맨해튼 57번가에 있는 그린(Green) 화랑의 책임자 리처드 벨라미가 1962년 9월에 그의 개인전을 열기로 했다.
전람회를 앞두고 올덴버그는 자동차만한 크기로 조각을 시작했다.
274cm가 넘는 대형 케이크를 만들었고 아이스크림콘의 길이는 304cm가 넘었다.
이 작품들은 비닐을 꿰맨 부드러운 형태의 조각들이었는데 바느질은 그의 첫 번째 아내 팻이 도왔다.
이처럼 일상적인 물질들을 크게 확대한 그의 작품들은 동화의 한 장면처럼 환상적으로 보였고 거대하게 확대된 낯익은 물체는 관람자들을 시각적으로 즐겁게 했다.
또한 비닐을 이용하여 전화기, 빵굽는 기계, 변기, 선풍기, 타자기 등을 부드러운 형태로 재현했는데 유머는 그의 작품에서 빠뜨릴 수 없는 요소였다.

그린 화랑에서의 전람회는 경제적으로 큰 이윤을 남겼지만 평론가들은 별로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의 조각들은 완전추상을 찬양하던 그린버그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는데 당시 평론에서 그린버그의 위상이 대단할 때였다.
그러나 올덴버그가 그해 11월 시드니 재니스(Sidney Janis) 화랑에서 대규모로 개최된 ‘신사실주의 예술가들 The New Realists’전에 참여했을 때 팝아트는 화랑의 거리 맨해튼 57번가를 자랑스럽게 행진했다.
전람회의 주제 ‘신사실주의자들’은 프랑스말 Nouveaux Realistes의 번역이다.
과격한 전람회라는 평을 받은 이 전람회에 워홀을 비롯하여 팝아트 예술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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