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워홀은 캠벨 수프 통조림 그림을


워홀은 뉴욕에서 개인전을 열고 싶었지만 뉴욕에는 그를 반기는 화랑이 없었으므로 순수미술에서의 첫 개인전은 로스앤젤레스의 페러스(Ferus) 화랑에서 가질 수밖에 없었다.
워홀이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는 중개상 어빙 블럼과 아내 베티 애서를 만난 것은 구겐하임 뮤지엄에서 열린 구스턴의 전람회 기념 파티에서였다.
블럼은 그날 아침 앨런 스톤의 화랑에 갔다가 가격이 각 100달러로 붙어 있는 워홀의 캠벨 수프 통조림 그림 두 점을 보았다.
애서는 워홀의 그림을 사고 싶었지만 남편이 사줄 기미를 보이지 않아 포기했다.

뮤지엄에서 몇 블럭 떨어지지 않은 워홀의 화실에 초대받은 블럼 부부는 수십 점의 캠벨 수프 통조림 그림을 보았다.
블럼이 “어째서 만화그림은 그리지 않죠?” 하고 묻자 워홀은 “리히텐슈타인이 유사한 주제로 그리고 있는 데다 그가 만화를 거의 완성시켰기 때문에 나는 수프 통조림을 그립니다”라고 대답했다.
블럼은 화실에 오래 머물면서 그의 그림에 관심을 보였으며 워홀에게 “당신 그림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나요?”라고 물었는데 이 말은 그를 대변하는 중개상이 따로 있느냐는 뜻이었다.
“마사 잭슨이 관심을 보였지만 난 아직 화랑에 소속되어 있지 않습니다”라고 답하자 블럼은 캘리포니아에서 전람회를 가질 생각이 없냐고 물었고 워홀은 “원더풀!”이라고 대답했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1962년 7월에 전람회를 열기로 합의했다.
블럼은 그날 수프 통조림 그림 두 점을 가져갔고 애서는 우표를 64번 반복하여 그린 그림을 샀다.
블럼 부부가 떠나고 며칠 후 워홀은 전람회를 위해 수프 통조림 그림들을 캘리포니아로 발송했는데 32개의 수프 통조림 그림도 포함되었다.

이 시기에 팝아트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으므로 언론은 관심을 가지고 팝아트 예술가들을 주시했다.
1962년 5월 11일자 《타임》은 〈케이크 한 조각 스쿨 The Slice of Cake School〉이란 제목으로 기사를 실었다.

일군의 화가들은 현대문명의 가장 진부하고 저속하기조차 한 장식물도 캔버스로 운반하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기사를 쓴 사람은 티보드, 리히텐슈타인, 로젠퀴스트, 그리고 워홀의 작품에 관해 언급했고 워홀의 사진도 게재했다.
통조림따개로 캠벨 수프 통조림을 막 따려는 자신의 그림 앞에서 워홀이 한 손에는 통조림, 다른 손에는 숟가락을 들고 먹으려는 시늉을 한 사진이었다.
뉴욕에 아직 워홀을 받아들인 화랑이 없을 때 이러한 사진이 《타임》에 소개된 것은 워홀에게는 여간 다행스런 일이 아니었다.

이제 워홀의 이름이 서서히 알려져 미술계 사람들의 화실 방문이 빈번해지자 워홀은 그들이 올 때마다 조수 나단 글럭으로 하여금 서둘러 상업미술품들을 지하실로 옮기도록 하여 자신이 순수미술에 전념하는 것처럼 위장했다.
그의 화실에는 대중적으로 알려진 레코드판이 많았는데 로큰롤의 왕 엘비스 프레슬리의 레코드는 모두 있었다.
워홀은 축음기를 조작하여 엘비스의 노래 〈사랑에 빠진 십대 Teenager in Love〉가 계속해서 흘러나오도록 했는데 반복되는 엘비스의 노래는 반복하여 그리는 그의 미학과 잘 어울렸다.
이처럼 워홀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부각시키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으며 또 그런 일에 지나치게 세심했다.

예정대로 1962년 7월 9일부터 8월 4일까지 로스엔젤레스 페러스 화랑에서 개인전이 열려 화랑의 세 벽에 32점의 수프 통조림 그림이 걸렸다.
페러스의 라이벌 화랑은 진열장에 80~90개의 실제 캠벨 수프 통조림을 쌓아놓고 “여기에서 통조림을 사십시오. 1달러에 다섯 개 드립니다”라고 선전하여 워홀의 전람회를 망치려고 했지만 오히려 전람회를 널리 알리는 역효과를 초래해 사람들은 워홀의 수프 통조림 그림에 더욱 관심을 보였다.
여섯 명의 예술품 수집가들이 블럼에게 워홀의 통조림 그림을 각 100달러씩에 모두 사겠다고 제의하더니 무슨 꾀가 생겼는지 일부만 사겠다면서 먼저의 제의를 철회했다.
블럼은 그림 모두를 사야지 예술가가 일부만은 팔지 않으려 한다고 퉁겼는데 사실 워홀은 일부라도 팔고 싶어 했다.
블럼은 딴 생각이 있었는지 자신이 32점을 모두 사겠다면서 가격을 깎아달라고 했다.
워홀은 한 점에 50달러씩 쳐서 모두 1,500달러를 요구했고 블럼은 1,000달러에 사겠다고 해서 승낙했다.
블럼은 워홀에게 매달 100달러씩 10개월 동안 송금했다.

워홀은 같은 캠벨 수프 통조림을 소재로 해서 캔버스에 통조림 하나가 가득 차게 그리기도 하고 상표가 떨어져 나간 통조림을 그리기도 했으며(그림 75) 50개, 100개, 200개의 통조림(그림 66)을 캔버스에 가득 차도록 그림으로써 같은 주제 내에서 다양한 작품을 제작했다.
뒤샹은 워홀의 수프 통조림 그림에 관심을 표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만일 캠벨 수프 통조림을 50번 반복해서 그린다면 통조림의 시각적 이미지에는 관심이 없어지고 통조림 50개를 캔버스에 그려 넣는 일에만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수프 통조림 그림을 본 사람들은 왜 슈퍼마켓에 진열되어 있는 상품을 그리냐고 물었으며 대량생산이나 소비주의와 광고에 반발이라도 하는 것이냐고 묻기도 했다.
이반은 수프 통조림 그림을 보고 워홀의 특허가 될 만하다고 아주 만족해했다.
워홀은 수프 통조림을 반복해서 그림으로써 리히텐슈타인과 자신의 그림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버몬트의 베닝턴 대학에 재직하고 있던 영국의 평론가 로렌스 알로웨이는 1962년 봄 학기에 학생들에게 워홀의 수프 통조림, 코카콜라 병, 하인즈 케첩 그림에 관해서 강의하면서 워홀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라고 말했다.
또한 슬라이드로 워홀의 작품들을 소개하면서 토론을 제안했으므로 팝아트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커졌다.

그 학생들 가운데 수지 스탠턴은 아예 워홀에 관해 논문을 쓰면서 무엇이 워홀로 하여금 그러한 그림들을 그리게 했는지 연구했다.
16명의 학생들이 워홀의 화실을 방문할 때 그녀도 같이 방문했다.
스탠턴이 논문에서 인용한 워홀의 말들을 보면 그의 단순함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나와 함께 수프를 나누어 먹지 않겠어요?
막 점심식사를 하려던 참인데. 아니 아침이야, 저녁이야?
아무려면 어때, 시간이 중요한 건 아니지. 난 시간에 상관하지 않고 늘 수프를 먹거든요.
난 수프를 좋아하는데 다른 사람들도 수프를 좋아하면 난 기분이 좋아요.
… 내가 어렸을 적에 어머니는 항상 이런 수프를 내게 먹였지요.
이제 어머닌 돌아가셨지만 수프를 먹을 때면 이따금 어머니 생각이 나서 지금이라도 어머니가 내 곁에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워홀의 형 폴에 의하면 어머니는 그들 형제에게 늘 캠벨 수프를 먹였다고 한다.
워홀은 개인전이 열리던 1962년 7월과 8월 무더운, 여름 땀을 흘리며 흑백사진을 실크스크린으로 제작하는 일에 열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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