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과 이브의 후손이 최후의 날에 받아야 할 심판
 

  인간의 죽을 죄와 어리석음에 대해 비판한 보스는 <최후의 심판 The Last Judgement>이라는 중세의 가장 큰 테마를 통해 이를 더욱 더 조명했다.
빈 소재의 이 작품은 1504년 막시밀리안 1세의 아들 스페인의 왕 스물여섯 살의 필리프가 36파운드를 선불로 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빈의 것이 아닌 동일한 제목의 다른 작품일 것으로 추측된다.
두 종류의 작품 외에도 동일한 제목의 작품 일부분이 현존한다.
빈 소재의 작품은 보스가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 밖의 것들은 보스의 추종자들이 보스의 작품을 모사 혹은 인용하여 제작한 것들로 보인다.
빈 소재의 작품은 보존상태가 나쁘고 수차례에 걸쳐서 색을 덧칠한 상태인 데다 맨 윗부분 일부가 질려나갔다.

<최후의 심판>은 아담과 이브가 금기로 된 선악과를 간교한 뱀의 유혹을 받아 따 먹고 낙원에서 추방된 이후 아담과 이브의 후손이 최후의 날에 받아야 할 심판이 되었다.
그리스도가 구주로 입회하는 가운데 죄를 범하지 않은 인간들은 이 날 무덤에서라도 부활하게 되지만 죽을 죄를 지었거나 어리석은 인간은 벌을 받아 영원한 고통의 세계로 보내진다는 것이 성서의 가르침이다.
그리스도는 최후의 심판을 예고했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을 떨치며 모든 천사들을 거느리고 와서 영광스러운 왕좌에 앉게 되면 모든 민족들을 앞에 불러놓고 마치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갈라놓듯이 그들을 갈라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자리잡게 할 것이다.
그 때에 그 임금은 자기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너희는 내 아버지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니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를 차지하여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하였다.
또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으며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주었다.”

이 말을 듣고 의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렸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또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으며,
언제 주님께서 병드셨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으며,
언제 주님께서 병드셨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저희가 찾아 가 뵈었습니까?”

그러면 임금은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왼편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의 졸도들을 가두려고 준비한 영원한 불 속에 들어가라.
너희는 내가 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하지 않았고,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으며,
또 병들었을 때나 감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아주지 않았다.”

이 말을 듣고 그들도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주님, 주님께서 언제 굶주리고 목마르셨으며, 언제 나그네 되시고 헐벗으셨으며, 또 언제 병드시고 감옥에 갇히셨기에 저희가 모른 체하고 돌보아드리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그러면 임금은 “똑똑히 들어라. 여기 있는 형제들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 곧 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다” 하고 말할 것이다.
이리하여 그들은 영원히 벌받는 곳으로 쫓겨날 것이며,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들어갈 것이다.(마태복음 25:31~46)

최후의 심판에서 벌 받는 사람이 없도록 예비하는 것이 중세 교회의 목적이었다.
교회는 교인들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축복을 받는 일이며 어떻게 하는 것이 심판을 면치 못하고 저주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쳤다.
인간에게는 원죄가 있고 죄를 범하는 나약한 존재이지만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살지 않을 경우 최후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고 가르쳤다.
14세기 네덜란드 신비주의자 얀 반 로이스브로크Jan van Ruysbroeck는 지옥에 대한 두려움이 올바른 삶으로 인도하는 최선의 방법이 되지 못함을 지적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의견이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1380~1471)에 의해 『그리스도의 모방 Imitation of Christ』을 통해 나타났다.
그는 적었다.

"신에 대한 사랑이 죄를 금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지옥의 두려움이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해줄 것이다.
이는 좋은 일이다."

대다수의 믿음에 부응하여 저주받은 자가 겪게 될 영원한 고통에 관해 내용이 수많은 책과 설교를 통해 상세하게 묘사되었다.
새로운 신앙생활을 포함하여 갖가지 정신적인 운동을 통해 최후의 심판과 지옥에 대한 경종이 사람들의 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최후의 심판은 기독교 미술이 생긴 이래 중요한 주제가 되었으며 교회와 수도원에는 이를 주제로 제작된 벽화 조각 등이 장식되었다.
크리스천이 아니더라도 최후의 심판이 있다는 걸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북유럽에서는 시청 건물에도 최후의 심판이 장식되어 위정자와 법관들에게 심판의 준엄함을 상기시켰다.
교회가 최후의 심판이 임박했다고 주장함으로써 보다 경건한 크리스천이 될 것을 종용했으며 심판의 대한 사람들의 공포를 고조시켰다.
세계가 종말에 이르렀다고 주장한 예언자들은 그리스도 출현 이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이런 예언과 주장이 15세기 말에 더욱 성행했으므로 사람들은 불안해 했다.
종말론을 편 사람들은 한결같이 역병, 홍수, 그 밖의 자연적인 재해를 들어 신의 진노의 증표로 삼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적·정치적·사회적 사건들이 생길 때마다 그리스도 출현의 징후를 발견하려고 혈안이 되었다.
1499년 독일의 점성술사는 1524년 2월 25일에 제2의 노아의 홍수가 발생하며 세계가 멸망할 것이라고 주장해 사람들을 현혹시켰다.
예술가들의 작품에서도 종말에 대한 테마가 종종 나타났으며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예배당 벽에 그린 <최후의 심판>은 유명하다.
정치적·사회적 불안이 더욱 더 종말론에 대한 믿음을 부추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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