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현대 정물화 캠벨 수프 통조림
1960년부터 워홀은 잉크, 템페라, 크레용, 유화물감을 혼용하여 아주 새로운 현대의 정물화 캠벨 수프 통조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샤르댕의 정물화를 본 적이 있으며, 세잔느가 포도주병과 사과가 놓인 식탁을 그린 정물화를 보았다.
대중적인 물질들이 다양하게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워홀은 미국 중산층 사람들이 즐겨 먹는 캠벨 수프를 정물화의 소재로 선택했던 것이다.
당시 수프 통조림 시장점유율이 약 80%에 달한 켐벨사를 선택한 것은 캠벨 수프가 가장 대중적이었기 때문이다.
워홀은 1960년 캠벨 토마토 수프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어렸을 적에 토마토 수프를 수없이 먹었다고 했다.
만화그림을 그리던 워홀은 리히텐슈타인의 만화그림을 보고는 그와 충돌하지 않으려면 어떤 그림을 그려야 되겠느냐고 친구들에게 묻곤 했지만 누구도 그가 통조림을 그릴 줄은 몰랐다.
1962년 2월 카스텔리 화랑에서 전람회를 가질 예정이었던 리히텐슈타인을 의식한 워홀은 그를 능가할 그림으로 캠벨 수프 통조림을 선택한 것이다.
워홀은 수프 통조림을 그리면서 캠벨사가 사전에 알지 못하도록 비밀로 했다.
어떤 식으로라도 상업적 요소가 개입되면 순수회화를 추구하려는 자신의 의도가 퇴색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1961년 말 예술품 중개상 앨런 스톤이 워홀을 방문했다.
추상표현주의 회화에 관심이 많았던 스톤은 워홀의 그림을 보고 추상표현주의 그림처럼 싱싱하게 우거진 색조가 없고 밋밋하기만 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던 그가 수프 통조림 그림을 보고는 “수프 통조림을 잔뜩 쌓아놓은 훌륭한 그림에 반했다”고 말했다.
스톤이 위탁판매 형식으로 가져간 그림들 가운데는 100개의 캠벨 수프 통조림으로 캔버스를 채운 그림과 통조림 하나를 크게 확대하여 그린 그림도 포함되었다.
워홀의 작품들을 자신의 화랑 창고에 넣어두고 살 만한 구매자들에게 보여주곤 하던 스톤은 워홀에게 인디애나, 제임스 로젠퀴스트와 함께 그룹전을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워홀은 자신이 바라는 것은 그룹전이 아니라 개인전이라고 하면서 거절했고 인디애나와 로젠퀴스트도 그룹전이라면 흥미가 없다고 거절했다.
이 무렵 팝아트가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해 세 예술가들은 팝아트의 선구자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저마다 두드러진 예술가로 인정받고 싶어 했지 그룹전으로 한꺼번에 소개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던 것이다.
스톤은 “그들은 나의 제의에 모두 격노했다”고 말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57번가에 있는 화랑도 아니고 82번가면 후미진 곳인 데다가 개인전도 아니고 세 사람을 한데 묶어 그룹전을 열겠다는 스톤의 아이디어는 그들에게 재고의 가치도 없었던 것이다.
세 사람은 각자 개인전을 열 수 있는 화랑을 물색했다.
스톤은 잘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워홀의 개인전을 열어주어야 한다는 전화를 여러 번 받았다고 한다.
이 시기에 워홀은 자신이 바라는 제대로 된 화랑에서 전람회를 가질 수 없어 아주 풀이 죽은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