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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서에 의하면 보스에게는 두 형제와 한 명의 누이가 있었다.
그는 1481년 6월 서른 살가량 되었을 때 알레이트 고이아르츠 반 덴 메르베네Aleid Goyarts van den Meervenne를 아내로 맞았는데,
부자 상인의 딸인 알레이트는 많은 재산을 자신의 몫으로 갖고 있었다.
알레이트가 보스보다 몇 살 더 많았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무려 25살이나 많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하지만 그때나 오늘날에도 네덜란드에서 남자가 연하의 여인을 아내로 맞이 하는 것이 보통이므로 나이 차이가 아주 많았던 것 같지는 않다.
두 사람은 고향이 같으므로 어려서부터 서로를 알고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며,
결혼생활이 36년 동안 지속된 것으로 보더라도 나이 차이가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초혼이고 보스가 세상을 떠난 후 수년 후 알레이트가 타계했으며 두 사람 사이에 자식은 없었다.
보스 부부는 시장 북쪽 사회적으로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에서 살았으며
아버지의 집에서 몇 집 떨어진 곳이었고 아버지의 집보다 더 컸다.
보스 부부의 집은 폭이 5.5미터가량 되었다.
그 지역에는 커다란 집들이 많았다.
경제적으로 넉넉했으므로 보스는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알레이트는 집 외에도 재산이 있었고 정기적인 수입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보스가 타계한 후 6년을 더 살다가 죽었으며 그녀의 재산은 친정의 몫이 되었다.
보스가 타계한 지 넉 달 후 12월 1일 보스의 누이 헤르베르테Herberte와 화가이면서 조각가인 두 조카는 결혼 후 보스가 이룩한 재산을 자신들이 유산으로 상속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이렇게 주장한 것으로 미루어 보스가 결혼 후에도 계속해서 가족의 작업장에서 작업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법적 서류에 보스의 재산으로 등록된 건 아무것도 없다.
그는 수입이 생길 때마다 아내에게 주었으며 자신의 몫으로 따로 갖고 있었던 돈은 없었다.
보스 부부는 적십자't Root Cruys(the Red Cross) 건물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중세 후기 성모 마리아를 숭배하는 형제회가 여럿 있었고 이 도시의 형제회는 그중 하나였다.
형제회가 추구한 것은 일곱 가지 자비를 실행에 옮기는 것으로 마태복음 25:35~46의 말씀을 받들어
굶주린 자에게 음식물을 제공하고,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주며,
나그네를 따뜻하게 맞아 주고,
헐벗은 자에게는 입을 것을 주며,
병든 자를 돌봐주고,
감옥에 갇힌 자를 방문하며,
죽은 자의 시신을 묻어주는 것이었다.
형제회 소속 회원들은 지상에서의 하나님의 종으로서 일곱 가지 의무를 이행하려고 노력했다.
형제회는 네덜란드 북부와 베스트팔리아Westphalia 사람들에게까지도 폭넓게 알려졌으며
규모가 크고 경제적으로 넉넉한 이 단체는 스헤르토겐보스 시민의 종교와 문화에 크게 공헌했다.
1318년 이전에 결성된 형제회는 평신도와 신실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었고,
이들은 자신들이 재정을 담당한 성 요한 교회 내 기적을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한 성모 마리아상Zoete Lieve Vrouw 앞에서 예배를 올렸다.
형제회는 성가대, 오르간 연주자, 작곡가들을 고용하여 매일 미사를 올렸으며 축일을 성대하게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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