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해프닝은 조립예술과 환경예술에 가깝지만 

 

예술과 인생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해프닝은 조립예술과 환경예술에 가깝지만 조립예술과 환경예술은 고정되고 정지된 반면, 해프닝은 예술가가 움직임으로써 주위의 사물들에 의해서 조절당하면서 사물들을 눈여겨보게 된다.
케이지는 창작과정에서 우연의 중요성을 대단히 강조하면서 해프닝의 의미는 “자연발생적이며 줄거리가 없는 극적인 이벤트이고, 어떤 특정한 사람들의 참여나 반응을 어느 누구에게도 바라지 않으며, 관람자나 해프닝의 행위자 모두 의식이 바뀌기를 목적으로 할 뿐”이라고 말했다.
해프닝에는 대화가 없고 연기가 없으며 상상적 분위기의 연출 또한 없고, 해프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단지 물리적으로 지루함을 보여줄 뿐이다.
해프닝은 넓은 의미에서 머스 커닝햄의 춤과도 관련이 있고 케이지의 음악과도 관련이 있다.
미학의 발전과 함께 해프닝은 완전히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캐프로의 아이디어들은 유럽에까지 알려졌고 이브 클랭(그림 64)과 현대판 무당이라고 불리우는 요셉 보이스의 정치적인 행위에까지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브 클랭의 누드를 이용한 해프닝은 영화 〈몬도가네〉를 통해 세계적으로 알려졌다(그림 65).

1962년 잡지 《플럭서스 Fluxus》의 창간자이자 대지예술가 조지 매시우나스는 독일 코롱에서 50명의 음악애호가들이 보는 앞에서 동료 예술가들과 함께 음악적 이벤트를 벌였다(그림 63).
그들은 피아노를 부수기 시작한 것이다.
매시우나스는 음악이란 소리를 내는 물질과 관련이 있다고 했는데, 예를 들면 망치로 쳐서 나는 소리가 피아노 소리라고 했다.
또한 “똑같은 이유로 인간의 언어나 음식을 씹어 먹는 소리가 예술적 노래 부르기보다 더 확실한 소리다”라고 주장했다.
플럭서스 그룹 예술가들은 주로 음악에 관심이 많았지만 케이지는 음악의 전문분야에 대한 개념을 쓸모없는 것으로 간주한 반면, 매시우나스와 동료 예술가들은 뒤샹을 비롯한 다다이즘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예술을 거꾸로 뒤집는 것으로 인식했다.
이러한 인식은 그림을 그린다든가 물체를 제작하는 것에 종지부를 찍는 것을 의미했다.

플럭서스 선언문에서 반(反)음악, 반시, 그리고 반예술을 주장하는 문구가 나타났는데 이는 곧 다다의 정신이었다.
플럭서스 그룹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요셉 보이스가 그룹에 가세하면서부터였고 백남준은 보이스를 만난 후 그룹에 동조했다.

유럽에서는 이러한 행위를 신사실주의라고 불렀는데 팝아트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지만 사람들은 이를 네오다다로 이해했다.
팝아트는 세계적인 주류로 인정받을 수 있는 분위기에 편승했으며 워홀과 리히텐슈타인 그리고 친구 예술가들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행위를 한 행운의 예술가들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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