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풍경화가
 

  브뢰겔의 빼어난 풍경화의 토대는 1550년대 초 이탈리아, 프랑스, 스위스 등지를 여행하면서 연필로 소묘를 그리면서부터 생겼다.
소묘에는 수많은 획과 점묘들이 있다.
원근법적인 표현과 정확한 세부묘사 등이 눈에 띄지만 이런 요소들은 풍경화에 나타난 생생한 대기 등에 비하면 부차적이다.
그는 색채에 의존하는 깊이감의 표현과 전통적 구도를 따르기보다는 실재 풍경을 그대로 묘사하는 데 전력했다.
뒤러를 제외하고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이 등장하기 전 그처럼 사실 묘사에 충실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풍경 소묘를 제작한 화가는 일찍이 없었다.

1560년대에는 이전 화가들의 강한 색채를 사용하면서도 기교로 미묘한 변화를 시도하면서 엄격한 색채 공식에 얽매이지 않았다.
대형 패널화와 밝은 색채 그리고 생기 있는 붓질은 보스를 연상하게 하지만
<월력화 The Months> 시리즈와 같은 풍경화에서는 풍자나 교훈적 요소를 발견할 수 없다.
<월력화> 시리즈는 이 분야 최초의 작품으로 풍경화가로서의 그가 성취한 으뜸가는 업적이며 당대의 문인과 후원자들도 이 점을 인정해주었다.
그의 혁신적인 풍경화의 영향은 지대하지만 후계자들은 오히려 그의 풍속화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피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와 같은 천재 화가는 브뢰겔의 풍경화가 빼어남을 인정했다.
17세기를 대표할 만한 화가 루벤스는 브뢰겔의 아들 얀의 친구였다.
얀이 1625년 부모의 무덤에 비문을 새겼을 때 루벤스는 자신의 그림으로 묘비를 장식했는데,
이는 브뢰겔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다.
루벤스는 오르텔리우스가 소장한 <성모의 죽음>을 비롯하여 브뢰겔의 작품을 몇 점 소장했으며
지금은 현존하지 않는 <카드놀이를 하다 다투는 농민 Peasants Quarrelling Over a Game of Cards>을 모사했다.
그는 브뢰겔의 작품을 연구했다.
그의 후기 풍경화는 브뢰겔의 <월별노동>을 상기시키는 우주적 스케일을 보여준다.
후대의 네덜란드 화가들 가운데서 브뢰겔의 후기작이 지닌 기념비성을 가장 완벽하게 이해한 사람이 루벤스였다.
루벤스와 같은 대가가 브뢰겔의 조형적 특징에 이끌린 건 당연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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