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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뢰겔이 일반인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농민, 속담, 민속의 장면을 유머스럽게 그렸다고 해서 그를 농민화가로 본 견해는 후대 연구가들에 의해 지지를 받지 못했다.
플랑드르 사회의 가장 부유하고 지식인 계층이 브뢰겔의 작품을 수집한 것으로 봐도 그가 농민일 수 없다는 사실이라는 점이 제기되었다.
게다가 브뢰겔의 친구들 중에는 유명한 지리학자이자 지도제작자인 아브라함 오르텔리우스Abraham Ortelius(1527~1598)도 있었다.
두 사람의 우정은 오르텔리우스의 『교우록 Album Amicorum』 중 추도문에 나타나 있다.
브뢰겔의 사후 몇 년 동안 집필된 『교우록』에서 오르텔리우스는 브뢰겔의 인간성과 그의 작품에 많은 관심을 나타냈다.
이런 지식인과 우정을 나눈 것을 보더라도 그가 농민화가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브뢰겔은 교육을 받은 지성인이었을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단지 유머스러운 것이 아니라
그 밖에도 깊은 의미가 내재해 있을 것으로 가정하고 살펴보아야 한다.
하지만 일부 연구자들이 그를 지나치게 높이 평가한 나머지 심오한 철학적·도덕적 개념이 있으며
인간에 대한 비관적 시각을 구체화 했다는 식으로 주장하며
비교적 명확하게 인식되는 작품조차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정교한 우의로 해석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그의 작품을 묘사가 된 것보다 더 많은 것이 함축되어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시각으로 바라보는 건 옳지 않으며 이런 태도는 보스의 작품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묘사된 것에 대한 바른 이해를 통해 브뢰겔의 창작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보스와 브뢰겔의 시대에는 상징과 우의가 선호되었으므로 두 사람의 작품에 나타난 상징과 우의는 유행의 취향을 반영한 것이다.
그리고 작품을 교훈을 목적으로 제작하는 것도 당시에는 일반적 경향이었다.
따라서 브뢰겔이 관람자에게 주려고 한 교훈이 무엇이었는가 하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절실히 요구된다.
보스와 브뢰겔의 작품은 당시의 예술적·사회적 환경 안에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브뢰겔에 있어서 주변 환경은 보스의 경우보다 중요하다.
보스의 문학적·시각적 영향은 상당 부분 중세의 유산에 속한다.
브뢰겔의 테마 역시 보편적인 의미를 지니지만 시사성을 함축한 점이 특기할 만하고
자신이 살아가던 복잡한 도시생활을 좀더 직접적으로 표현했다.
그의 작품은 민중 연극, 종교적 축일 행렬, 민담과 속담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그에게 작품을 의뢰한 은행가, 상인, 인문학자들의 취향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러므로 브뢰겔 당시 플랑드르 문화적·사회적 배경을 이해하는 가운데 작품을 감상해야 한다.
그는 처음으로 플랑드르 도시의 삶을 생생하게 있는 그대로 화면을 통해 소개했다.
그의 작품을 세심하게 관찰하면 당시 플랑드르인의 일상생활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의 속담과 아이들의 갖가지 놀이도 알 수 있다.
그는 단지 삶의 현장을 시각화한 것이 아니라 유머를 첨가하여 익살스러운 방법으로 인간의 어리석은 행위를 지적하고 관람자를 교화시키려고 했다.
이런 그의 의도를 알지 못하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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