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조셉 코넬은 버려진 물질들을
조립(Assemblage)이라는 말은 1953년 장 뒤비페가 입체주의 콜라주보다 더 많은 물질들을 부착하는 작품들을 지칭하여 부른 말이다.
1961년 모마에서 열린 ‘조립예술 Art of Assemblage’전에는 뒤비페의 작품뿐 아니라 비예술적 재료들을 사용한 작품들이 포함되었는데 라우센버그도 이 전람회에 참여했다.
쓰레기 예술은 곧 미술계의 주류로 등장했다.
윌리엄 세이츠는 새로운 예술로 부상한 조립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그것은 색을 칠하거나 드로잉하거나 깎거나 모방하기보다는 전적으로 조립하며, 전체 또는 부분적으로 이미 형태를 갖춘 물질이나 공장의 생산품들 또는 예술적 재료가 아닌 것들을 예술품의 요소로 사용하는 구성예술을 말한다.
영국의 평론가 로렌스 알로웨이는 쓰레기를 조립하여 예술품을 제작하는 행위를 말 그대로 쓰레기 예술(Junk Art)이라고 불렀다.
쓰레기 예술가들은 도시에 버려진 물질들을 잠재미학적 물질로 가정하면서 그것들을 사용한 작품으로 전통적인 예술에 도전하려고 했다.
따지고 보면 그러한 시도는 피카소의 콜라주 구성과 정물화에서 이미 나타났다.
우리는 피카소가 색칠한 나무 조각에 철사 줄로 기타 줄을 표현했고 소리통을 상징하는 깡통을 달아 제목을 〈기타〉(그림 51)라고 붙였으며, 자전거 안장과 손잡이를 조립하여 〈황소 대가리〉란 제목의 조각을 만든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만들어진’ 물질의 사용은 뒤샹의 특허라 할 수는 없다.
다만 뒤샹이 ‘이미 만들어진’ 물질을 선택하는 행위조차 예술가의 창작이라고 주장했으므로 레디메이드 미학을 그와 연계하여 생각하는 것이다.
그 후 다다와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의 콜라주 작품에서 ‘이미 만들어진’ 물질들이 속속 나타났다.
쿠르트 슈비터즈는 자신의 집 전체를 쓰레기로 가득 채웠는데 장 아르프의 아내가 사용했던 브래지어도 있었고 시인친구가 사용했던 몽당연필도 있었다고 한다.
뒤샹과 슈비터즈의 미학은 뉴욕 스쿨의 젊은 예술가들에게 소중한 유산으로 상속되었다.
쓰레기 예술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조셉 코넬은 버려진 물질들을 개인적인 상자 안에 배열하는 방법으로 물질들에서 시와 노래 그리고 향수를 찾아냈다.
초현실주의가 여전히 유럽에서 성행하던 1930년대 초 유럽의 초현실주의 작품이 뉴욕 줄리앙 레비 화랑에서 소개되었을 때 코넬은 그들의 작품을 직접 관람했다.
제2차 세계대전 전후로 히틀러의 탄압을 피해 뉴욕으로 온 유럽 예술가들 가운데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이 특히 많아 코넬은 그들로부터 직접 초현실주의 미학을 배울 수 있었다.
코넬의 작품 역시 유럽의 초현실주의 작품과 나란히 줄리앙 레비 화랑에서 소개되기도 했다.
전람회는 그에게 행운이었고 고무된 그는 초현실주의 작품을 제작하는 일에 더욱 전념했다.
그가 유리를 부착시킨 상자 안에 낯선 물질들을 배열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 중반이었다.
초현실주의의 상투적인 개인적 꿈의 세계를 보여주는 그의 상자 안에는 오래된 사진, 지도, 때로는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과 19세기 미국사람들의 그림도 들어 있었으며 깨진 유리조각, 코르크 공, 쇠 조각 등 다양한 물질들이 배열되었는데 그의 어린 시절과 그에게 감동을 준 문학과 예술을 뜻했다.
상자 안에 잃어버린 어린 시절과 그것을 그리워하는 꿈이 갇혀 있는 코넬의 작품은 사람들로 하여금 추억과 꿈을 상기하게 했다(그림 52).
그가 사용한 물질은 팝 물질이었으므로 코넬을 팝아트의 선구자라고 말하는 평론가들도 있다.
1950년대 중반 이미 만들어진 물질들을 콜라주했던 라우센버그와 존스도 코넬로부터 받은 영향을 부인하지 않았다.
1967년 솔로몬 구겐하임 뮤지엄이 그의 회고전을 개최했을 때 코넬은 64세였다.
그의 상자 안에는 여전히 신비스러운 물질들이 들어 있었으며 잃어버린 과거가 향수를 자아내고 있었다.
코넬은 퀸즈에 거주하면서 어쩌다 맨해튼에 가면 골동품 상점에 들러 오래된 사진과 잘 알려지지 않은 기념품을 사가지고 돌아왔다.
1997년 퀸즈 뮤지엄(Queens Museum)의 개관 25주년 기념전에 코넬이 1930년대에 제작한 상자들도 전시되었다.
필자는 코넬의 상자들을 보고 그가 슈비터즈와 마찬가지로 고상한 사고를 가졌던 시인임을 알 수 있었다.
코넬이 상자 안에 자신이 원하는 물질들을 적절하게 넣음으로써 물질들은 더 이상 원래의 물질이 아니라 시인이 선택한 물질이 되었고, 또 예술가의 물질이 되어 사람들에게 미학적 경험을 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