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뉴욕 스쿨의 별처럼 떠오른 재스퍼 존스
1963년 3월 내부를 개조하여 막 문을 연 유태인 뮤지엄(Jewish Museum)에서 라우센버그 회고전이 열렸다.
이 회고전은 그가 미국미술에서 정상을 달리고 있는 예술가임을 시위할 만했다.
이듬해 모마와 런던 화이트 채플(White Chapel) 화랑에서 그의 전람회가 열렸으며 그해 제32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바티칸 신문의 편집자 로세르바토레 로마노는 그의 수상에 발끈하여 이렇게 말했다.
“라우센버그가 완전히 그리고 일반적으로 문화를 파괴했다.”
그러나 38세의 라우센버그가 최우수상을 수상한 것은 팝아트가 세계 모든 사람들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였고 미국미술의 승리를 고지하는 것이기도 했다.
뉴욕 스쿨의 별처럼 떠오른 존스도 1960년 타티아나 그로스맨의 영향을 받아 판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판화는 값이 싸 사람들이 손쉽게 구입할 수 있어 이 무렵 화랑주인들은 예술가들에게 판화제작을 의뢰하는 일이 많았는데 이러한 상업적 요구도 팝아트를 은근히 부채질했다.
1963년 존스의 석판화들을 묶은 책이 출판되었다.
1960년 그는 음료수 애일 캔을 청동으로 제작해 색을 칠했는데 실제 캔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었다(그림 47).
존스는 두 개의 캔을 모방하면서 하나는 다 마신 빈 깡통으로, 다른 하나는 음료수가 들어있는 깡통으로 제작해 라우센버그와 자신을 가볍고 무거운 관계로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1960년대 초 존스는 사람의 모습을 회화적인 요소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피부를 위한 습작〉(1962), 〈다이빙 선수〉(그림 35), 〈땅끝〉(1963), 〈잠망경〉(1963)은 그렇게 해서 그린 그림들이다.
그는 캔버스에 자신의 손바닥과 발바닥을 찍거나 팔 전체를 찍기도 했고 얼굴 형태를 남기기도 했는데 이는 피부를 회화적인 요소로 사용하려는 의도에서였다.
1952년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개최된 세잔 전시회에서 〈일광욕하는 사람〉을 보고 감명을 받은 존스가 1960년대에 그린 〈일광욕하는 사람〉은 변형한 것이지만 세잔의 영향이 현저하게 남아 있다.
〈다이빙 선수〉도 변형을 시도했지만 여전히 세잔느로부터 얻은 아이디어를 엿볼 수 있다.
당시 세잔 작품에 대한 심리적 분석을 처음 시도한 마이어 샤피로는 〈일광욕하는 사람〉을 ‘자아의 드라마’라고 기술했다.
레오나르도의 인체에 관한 드로잉과 세잔느의 〈일광욕하는 사람〉은 1960년대의 존스에게 주어진 숙제로 반드시 풀어야 할 내용이었다.
이 시기에 숟가락과 포크가 처음으로 그의 캔버스에 매달렸는데 그것들은 지성과 무관한 팝 물질들이다.
팝 이미지는 그가 선호하는 작품의 주요내용으로 캔버스에 빗자루와 컵이 등장했다.
〈바보의 집〉(그림 44)의 경우 빗자루는 물감을 칠하는 붓의 상징이다.
라우센버그가 팝 물질들을 병렬하면서 즉흥적으로 작품을 제작했듯이 존스도 사변적인 서투른 방법으로 팝 물질들을 즐겨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