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라우센버그와 존스의 팝 아트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50년대 말까지 뉴욕 스쿨의 주류는 추상표현주의였다.
평론가 해롤드 로젠버그는 추상표현주의 예술가들 가운데 폴록, 드 쿠닝, 프란츠 클라인의 그림들을 묶어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이라고 구별했고 평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로드코, 스틸, 뉴먼의 그림들을 묶어 컬러필드(Color-Field)라는 말로 분류했다.
추상표현주의의 이 두 가지 회화경향은 1950년대 말까지 뉴욕 스쿨에서 두드러졌다.

추상표현주의가 한창 성행하던 1950년대 중반에 활약하기 시작한 라우센버그와 존스 는 앞서 언급한 대로 팝아트와 추상표현주의 사이에 교량 역할을 했다.
기분내키는 대로 빠르게 붓질하거나 물감을 뚝뚝 떨어뜨리는 기교를 사용한 것은 추상표현주의의 영향이었으며, 일상의 물질을 콜라주하는 방법은 팝아트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었고 버려진 쓰레기를 조립하여 사용한 것은 조립예술과 쓰레기 예술의 선구적인 행위였다.
1960년대 초에는 두 사람의 활약이 두드러졌으며 팝아트가 리히텐슈타인과 워홀에 의해서 행위되기 시작했다. 한편 1960년대 후반부터 성행하기 시작한 미니멀리즘의 요소들을 1950년대 말 프랭크 스텔라의 그림에서 이미 발견할 수 있다.

추상표현주의가 황혼에 접어든 1960년대 초 새로운 기류를 먼저 형성했던 라우센버그와 존스는 이 책의 주인공보다 더 인기가 있었고 따라서 그들은 일찌감치 경제적으로 성공하여 커다란 화실과 집을 장만했다.
1961년 라우센버그는 그리니치 빌리지에 커다란 화실을 장만했으며 존스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연안의 섬에 집을 장만하고 그곳에서 작업하는 일이 잦았다.

라우센버그의 실크스크린은 유명했다.
1962년 여름 롱아일랜드에서 판화 전문 상점을 운영하는 타티아나 그로스맨이 라우센버그에게 한정판(U.L.A.E., Universal Limited Art Editions) 석판화 제작을 의뢰했다.
라우센버그는 석판화를 제작하면서 사진의 이미지를 실크스크린하는 방법을 보태어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했는데 이러한 기교에 관해 워홀로부터 도움을 받기도 했다.
여러 방법으로 실크스크린을 실험한 라우센버그는 TV 채널을 바꿀 때마다 나타나는 영상들을 혼용한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그는 TV와 잡지에서 주로 이미지를 구했다.

곧 워홀의 실크스크린에 관해 언급하겠지만, 워홀이 영부인이었다가 이제는 젊은 미망인이 된 미녀 재키를 실크스크린으로 수없이 제작하고 있을 때 라우센버그는 케네디 대통령의 이미지를 실크스크린으로 제작하여 캔버스에 부착했다.
〈항공로〉(그림 45)에서 그는 우주비행사와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부서진 건물, 토마토 상자, 낙서 등 사람들에게 낯익은 팝 이미지들을 회화적인 요소로 캔버스에 구성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게는 아주 단순한 이미지들이 필요하다. 물이 든 컵이나 종이 벽지를 바른 욕실,…… 난 그것들로 사회문제들, 세상에서 벌어지는 재난들을 중화시키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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