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1960년대 초 특기할 만한 두 전람회

1960년대에 미국에서는 헐리우드가 한창 성행했고 헐리우드에서 제작한 영화는 세계전역으로 보급되었다.
대중음악도 미국이 주도했는데 엘비스 프레슬리뿐 아니라 앤 마가렛, 펫분, 도리스 데이, 짐 리브스 등 수출품목들이 넉넉했다.
미국의 예술이 장르별로 만개하던 시기가 바로 1960년대였다.
시각예술에서도 만개현상이 있어 쓰레기 예술이니 조립예술이니 하면서 쓰레기 예찬 미학이 있었고, 평면작업을 갑갑하게 느낀 예술가들은 설치예술(Installation)을 하면서 공간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으며, 예술가들이 몸소 자신들을 표현의 도구로 사용하는 해프닝과 퍼포먼스도 이 시기에 잦았다.
1960년대 초의 뉴욕 화단은 마치 자유방임시대와도 같았다. 평론가들은 1970년대의 특징을 다원주의라고 하지만 필자는 다원주의가 1960년대 초에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본다.

1960년대 초에 특기할 만한 두 전람회가 있었는데 하나는 1961년 말 모마(MOMA)에서 열린 ‘조립예술 The Art of Assemblage’전이고 다른 하나는 이듬해 시드니 재니스(Sidney Janis) 화랑에서 열린 ‘신사실주의 예술가들 The New Realists’전이다.
윌리엄 세이츠가 주최한 ‘조립예술’전에는 입체주의 경향의 종이 콜라주와 사진 몽타주 외에도 다다와 초현실주의 작품과 쓰레기 조각 그리고 방 전체를 장식하는 환경예술까지 포함되었다.
1962년 10월에 개최된 ‘신사실주의 예술가들’전에는 영국과 미국의 잘 알려진 팝아트 예술가들과 프랑스의 신사실주의 예술가들 그리고 이탈리아와 스웨덴에서 이와 연계된 예술 행위를 하던 예술가들도 참여했는데, 미국에서는 라우센버그와 존스가 참여했다.
팝아트에 대한 인식이 아직 분명치는 않았지만 ‘신사실주의 예술가들’전은 지난 수년 동안 몇몇 예술가들이 행위한 팝아트를 공식화하는 중요한 의미를 남겼다.
이때까지만 해도 유럽의 신사실주의와 관련이 있는 팝아트에 대해서는 별도의 인식이 없었지만 추상표현주의나 파리에서 성행하던 앵포르멜 아트(L'Art Informel)와는 구별되었다.
유럽의 예술가들은 다다와 초현실주의를 유산으로 상속받아 그러한 경향의 미학을 추구했던 반면 영국과 미국의 예술가들은 근래의 대중적인 문화와 상업적이며 재현 가능한 이미지들에 관심을 기울였다.

재니스 화랑에서의 ‘신사실주의 예술가들’전은 팝아트가 현대미술에 주류로 등장했음을 고지했으며 젊은 예술가들에게 나아갈 통로를 열어주었다.
여기에는 라우센버그와 존스 두 사람이 선구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며 래리 리버스의 역할도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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