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과 친구들> 중에서

래리 리버스는 워홀에게

1959년 유태인 뮤지엄에서 래리 리버스의 전람회가 열리고 있을 때 워홀은 리버스를 만날 겸 뮤지엄으로 갔다.
미니스커트가 한창 유행할 때라서 뮤지엄에 온 여인들은 노출이 심했다.
리버스는 워홀에게 “앤디, 저 여자들을 봐라! 이제 여자들은 몸을 많이 노출시킨다. 넌 저런 여자들을 보면 욕망이 생기지. 그리고 여자들과 섹스하고 싶지. 넌 놀라운 열정을 불태우게 될 거야”라고 말했다.
워홀보다 먼저 팝아트에 해당하는 그림을 그린 리버스는 워홀보다 일곱 살이 많았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다니는 리버스는 술집에서 섹스폰을 불며 돈을 벌었고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시다 술집에서 추상표현주의 예술가들과 어울리곤 했다.

리버스가 1953년에 그린 〈델라웨어 강을 가로지르는 워싱턴〉(그림 38)은 팝아트를 예고하기에 적당한 작품이었다.
19세기 예술가 에마뉴엘 로이체의 대중적 아카데미즘 회화(그림 39)에 매료된 리버스는 대가들 그림을 자신의 주제로 삼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미국사람들의 향수 섞인 대중적 이미지들을 예기치 못한 주제로 재현하여 신선한 느낌을 주었으며 추상표현주의의 이성적인 그림에 자신의 것을 대조시켰다.
그는 1954-55년에 주로 누드를 그리면서 추상표현주의 예술가들을 대대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1955년에 그린 〈버디의 이중 초상화〉는 장모의 누드 두 점을 그린 것으로 마치 한 화면에 두 사람의 누드가 병렬된 것처럼 보이도록 구성해서 말년의 르누아르가 한 여인의 누드를 나란히 병렬시켜 두 여인의 누드인 것처럼 그린 것을 연상시킨다.

1963년에 그린 〈네덜란드 대가들〉(그림 43)은 렘브란트의 그림에서 구한 주제였다.
마네가 그려서 악명을 떨친 〈올랭피아〉(그림 42)를 주제로 〈나는 검은 얼굴의 올랭피아를 좋아한다〉(그림 40)를 그릴 때는 올랭피아 옆에 흑인여인의 누드를 나란히 그렸다.
마네는 1863년에 티치아노의 유명한 〈우르비노의 비너스〉(그림 41)를 주제로 사용하면서 비너스 대신 파리의 창녀 올랭피아를 그려 넣고 그 옆에 흑인 가정부를 등장시켰다.
마네의 〈올랭피아〉는 국전에서 낙선해 낙선전에서 소개되었는데, 황제가 “뻔뻔스러운 그림”이라고 말해 주말이면 사람들이 문제의 그림을 관람하려고 전시장 밖에 줄을 섰다고 한다.
이제 리버스는 창녀 올랭피아 대신 흑인여인의 누드로 새삼 충격을 주려고 했다.
리버스의 그림은 뉴욕 스쿨에서 독특했는데 추상표현주의에 속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팝아트라고 단정하기에는 팝의 이미지가 강하게 나타나지 못했다.
그러니까 그의 그림은 추상표현주의와 팝아트 중간에 위치했으며 그의 개성은 팝에 보다 가까웠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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