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재스퍼 존스의 새로운 객관적 분위기의 그림들은
재스퍼 존스는 회화의 가능성을 여러 가지로 실험했다. 1960년에 제작한 〈두 개의 공이 있는 그림〉(그림 36)도 그 가운데 하나로 나무로 만든 공 두 개로 캔버스를 둘로 가른 것이다.
그림의 평면은 두 개의 공 때문에 자연히 부서질 수밖에 없었으며 추상표현주의의 역동적인 붓질이 갈라지고 부서진 평면에서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그는 평면과 깊이의 상호작용을 보여주었으며 자유로운 붓질과 기계적인 글자를 통해 독특한 역설과 재담을 창조했는데 이것 역시 뒤샹의 것들과 유사했다.
존스는 그림 아래에 기계적인 형태로 그림 제목을 써넣음으로써 그림 제목이 회화적인 요소로 작용하도록 조작했다.
그는 개념과 시각적 실제를 다른 수준에서 섞었으며 그것들의 솔직한 요소들은 관람하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의 그림은 예술이 은유면서 동시에 아주 단순하다는 것을 시사했다.
존스의 새로운 객관적 분위기의 그림들은 나중에 하드 에지(Hard Edge) 예술가들, 즉 엘스워스 켈리, 케네스 놀런드, 프랭크 스텔라로 하여금 좀 더 지성적으로 색과 형태를 조절하는 완전추상을 추구하도록 했다.
위의 세 예술가들은 추상표현주의 예술가들과는 달리 개념적으로 웅대한 그림을 그렸고 그들에 비해 회화가 자아발견이나 자아정의라는 생각을 덜 가졌으며 오히려 회화를 실제의 독특한 형태나 조절된 형식적 재현으로 인식했다.
그의 회화적 구성이 명확해진 것은 1958 -59년에 〈색 안의 숫자들〉을 그리고 난 후부터였다.
존스는 빠르게 성공했고 경제적으로 넉넉해지자 1961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에디스토(Edisto) 섬에 집을 장만했다.
그곳에서 작업하면서부터 자연히 라우센버그와는 멀어졌으며 이듬해부터는 더 이상 친구 사이가 아니었다.
그의 중요한 첫 전람회가 1964년 1월부터 4월까지 모마에서 개최되었고 존스는 하와이와 일본을 방문한 후 런던의 화이트 채플 화랑에서도 전람회를 가졌다.
1968년 존스가 일본을 다시 방문할 무렵 에디스토 섬에 있는 집이 화재로 전소되자 지난 해 재정적인 여유가 있어 구입해두었던 과거에 은행이었던 맨해튼 남쪽 건물을 화실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1973년 그의 〈이중 하얀 지도〉(그림 37)가 경매에서 24만 달러에 팔렸는데 당시 생존하는 미국 예술가들의 작품들 가운데 최고가였다.
1980년 9월 휘트니 뮤지엄은 〈세 국기〉(그림 33)를 100만 달러에 구입했다.
그림 가격이 이렇게 폭등하게 된 원인은 1980년대 오일 파동이 있은 후 일본사람들이 예술품을 투자대상으로 간주하고 미련할 정도로 많은 돈을 주고 예술품들을 사들였기 때문이다.
존스의 작품이 뮤지엄에 100만 달러에 팔린 것도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었기 때문이며, 예술이 돈과 정치와 연계되어 황폐해진 경향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존스는 “나는 이따금 물체를 본 후에 그림을 그린다.
그러나 어떤 때는 그림을 그린 후에야 물체를 보기도 한다.
이 두 가지 방법은 모두 순수하지 못하며 난 어느 방법에도 만족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자연 안에는 무엇이든 볼 것이 있다. 나의 작품에는 눈의 초점을 바꾸기 위한 유사한 가능성들이 있다”고 말했고 “일반적으로 나는 단순한 개념을 그리는 데 반대한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