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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는 <다그니 유을>이란 제목으로 그녀의 전신을 그렸습니다.
짝사랑하는 여인의 모습을 전신으로 그릴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짝사랑은 정말이지 괴로운 일입니다.
자신의 모든 걸 내주고 여인의 사랑을 받고 싶은데 여인은 원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여인이 친구와 사랑에 빠졌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요?
뭉크가 질투한 건 당연합니다.
<다그니 유을>에서 손과 발의 묘사가 생략된 것이 특기할 만합니다.
붓질이 전체적으로 거칠고 의상 아랫부분에는 수직과 수평의 붓자국이 선명합니다.
마른 붓으로 물감을 조금 찍어서 신속하게 칠함으로서 거칠은 느낌을 주는데,
이는 표현주의 회화의 일반적인 경향이 되었으며
그가 일찍이 이런 선구자적인 행위를 한 것은 지적할 만합니다.
거친 감정은 거친 붓질로 나타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일부 비평가들은 그의 붓질을 프랑스 화화에 대한 천박한 모방이라고 혹평했지만, 뭉크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더 물감을 거칠게 칠했습니다.
자신의 절박한 감정을 표현하는 작업인데 물감을 얌전하게 그리고 매끈하게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
뭉크는 다그니가 자신보다는 친구를 사랑한 데 대해 질투를 느꼈습니다.
질투를 느끼지 않는다면 사랑이 아니겠지요.
시셋말로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고 하는데 웃기지도 않는 말입니다.
고약한 변명입니다.
헤어지는 사람은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고 말하는 사람은 위선자입니다.
인생의 가장 큰 가치와 아름다움은 사랑입니다.
뭉크는 실연의 괴로운 감정을 <질투>란 제목의 그림으로 여러 점 그리면서 자신의 아픔을 달랬습니다.
그는 <질투>에서 자신의 외로운 모습을 크게 부각시키면서 배경에 벌거벗은 요염한 자태의 다그니가 친구와 함께 서 있는 장면을 삽입했는데, 그녀와 함게 서 있는 남자 프시비지예프스키는 마냥 즐거운 모습입니다.
<질투 II>에서 뭉크는 다그니와 프시비지예프스키가 열렬히 키스하는 장면을 배경에 넣고 외로움과 더불어 경악해 하는 자신의 얼굴을 화면 앞에 부각시켰는데, 사랑과 질투의 심리가 정확하게 묘사되었습니다.
뭉크의 얼굴이 정면으로 클로즈업되어 감정의 격렬함이 관람자에게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뭉크가 실연을 맛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사랑에 대한 실패와 질투를 통해서 그는 더욱 더 여성에 대해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됩니다.
사랑하고 싶고 여인의 사랑을 받고 싶지만 실연의 아픔이 너무 커서 사랑하는 것 자체가 두렵게 되었습니다.
그의 여성관을 종합하면 이렇습니다.
여인은 아름답고 매력적이며 사랑할 만한 대상이다.
그러나 탐욕이 었어서 결국 남자를 절망에 빠뜨리고 죽음에 몰아넣는 마귀와도 같은 존재이다.
그의 여성관은 피해망상증과도 같았습니다.
그에게 여성에 대한 증오가 자라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이후 그가 여러 점으로 제작한 <흡혈귀>는 남자가 여자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사랑에 대한 표현의 행위이지만,
여자는 드라큘러처럼 남자의 피를 빨아먹기라도 하듯 목 뒤에 입을 갖다대고 있는 장면입니다.
뭉크에게 얼마나 여자에 대한 피해의식이 심화되어 있었던지 알게 해주는 작품입니다.
그는 평생 여자를 증오하면서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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