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과 친구들> 중에서
재스퍼 존스가 소문으로만 듣던 뒤샹을
재스퍼 존스가 소문으로만 듣던 뒤샹을 직접 만난 것은 1959년이었다.
존스는 미술사 전체를 통해 골고루 영향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데 레오나르도 다 빈치, 한스 홀바인, 조반니 피라네시, 폴 세잔느, 에드바르트 뭉크, 파블로 피카소, 르네 마그리트, 바넷 뉴먼, 그리고 뒤샹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1970년대 후반 누구로부터 영향을 받았느냐는 질문에 존스는 “나는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1907), 뒤샹의 〈그녀의 독신자들에 의해서조차 벌거벗겨지는 신부〉(그림 20), 세잔느의 〈일광욕하는 사람〉(1885), 그리고 라우센버그의 작품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대답했다.
1960년대 초 존스는 뒤샹으로부터 미학적인 영향을 받았고 두 사람이 만나 함께 나눈 관심사가 작품에 반영되었다.
존스의 작품 〈도착/출발〉(1963-64)에 써넣은 “조심스럽게 다룰 것(Handle with Care)”이라는 문구는 뒤샹의 〈큰 유리〉로부터 구한 아이디어였는데 워홀도 이와 같은 글을 그림에 써넣은 적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워홀이 작품에 써넣은 글을 존스가 도용했다는 설도 있는데 그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워홀의 그림에 나타난 글에 관해 언급할 때 알아보기로 한다.
1957년에 이미 평론가들은 뒤샹이 ‘이미 만들어진’ 물질을 사용한 방법과 존스의 작품을 연계하여 존스를 네오다다이스트라고 불렀다.
존스는 라우센버그와 함께 여러 차례 필라델피아 뮤지엄(Philadelphia Museum)에 가서 거기에 소장된 뒤샹의 작품들을 관람하면서 뒤샹의 천재성에 탄복했다.
평론가 니콜라스 칼라스는 1959년에 뒤샹을 존스와 라우센버그의 화실로 데려가서 뒤샹이 두 사람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도록 했다.
존스는 1960년에 뒤샹의 작품을 구입하면서 뒤샹을 “20세기 개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추켜세웠다.
존스는 1962년에 처음으로 추상표현주의와 팝아트를 혼용한 〈다이빙 선수〉(그림 35)를 그렸는데 두 개의 발자국과 네 개의 손자국을 회화적인 요소로 캔버스에 남겼다.
그림 왼쪽에는 색비교판 같은 둥근 다색판을 그려 넣고 옆에는 엷은 회색부터 진한 회색까지 점진적으로 달라지는 다양한 색질을 삽입했는데 뒤샹이 1919년에 그린 마름모꼴의 색비교판 같은 그림 〈너는 나를〉을 상기하게 했다.
이 무렵 그의 그림에 글자가 나타났으며 물감을 흘리는 추상표현주의의 기교를 일반적인 방법으로 사용했는데 라우센버그의 그림에서도 이러한 기교는 늘 나타나고 있었다.
1970년대 초 존스는 새로운 예술이 과거예술에 대한 비평이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난 예술이 예술을 비평한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새로운 예술과 과거예술의 관계에서 생각해본 적은 없다.
나는 과거예술도 새로운 예술의 비평이 될 수 있다고 보며 같은 이치로 새로운 예술이 과거예술의 비평이 된다고 생각한다.
존스는 이렇게 새로운 예술과 과거예술의 상관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했으므로 새로운 예술이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는 당시의 과격한 아이디어를 무턱대고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는 과거예술을 사변적으로 곡해해서 자신의 회화에 걸맞는 요소로 사용했으며 곡해는 그의 창작의 기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