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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규>와 함께 도난당한 작품이 <마돈나>인데, 이 작품 또한 뭉크의 대표작입니다.
그는 <절규>를 그린 후 곧 <마돈나>에 대한 습작을 종이에 목탄으로 하기 시작했고 유화로 완성한 건 1894~5년이었습니다.
여자의 요염함과 성적으로 남자를 자극하면서 동시에 스스로 사랑을 만끽하는 모습을 나타내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선택한 어둡고 음침한 색들을 보면 단지 가장 아름다운 여인 혹은 가장 탐스러운 여인을 그리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런 여인의 이면에는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을 폭로하려고 한 저의가 나타나 있습니다.
마돈나와 메두사를 합성시킨 것으로 여인의 양면성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이런 우울한 그의 사고는 그의 삶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습니다.
그는 마돈나에 액자틀을 그려넣은 후 그 위에 태아와 정충들을 올챙이가 꿈틀대는 것처럼 장식했습니다.
성교의 극치는 희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태됨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지적하려고 한 것입니다.
사랑과 수태가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표현한 것이지요.
이 작품의 모델이 있었느냐고 물었는데,
화가는 과장하고 왜곡하더라도 실재 모델이 있어야 그릴 수 있습니다.
레오나르도가 <최후의 만찬>을 그리면서 예수의 제자 유다의 모델을 찾지 못해 오랫동안 미완성으로 남긴 것은 유명합니다.
<마돈나>의 실재 모델은 뭉크가 사랑한 여인 다그니 유을입니다.
뭉크를 유명하게 만든 곳은 베를린입니다.
노르웨이는 당시 변방이었으므로 베를린과 같은 대도시로 오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을 때였습니다.
뭉크는 베를린에서 ‘검은 돼지’라는 별명으로 불리운 작은 술집에 자주 갔는데, 그곳은 스칸디나비아에서 온 시인, 작가, 극작가, 화가, 조각가, 미술사가, 평론가, 교수들이 즐겨 찾는 곳이었습니다.
그들은 밤새 술을 마시며 인생과 철학 그리고 예술에 관해 논했습니다.
뭉크가 가까이한 두 작가가 있었는데, ‘검은 돼지’의 리더 스트린드베르크와 스타니슬라브 프시비지예프스키였습니다.
스트린드베르크는 여성에 대한 숭배에 가까운 열애와 회의 그리고 이혼과 방황을 되풀이한 특이한 존재였습니다.
폴란드 출신의 상징주의 작가 프시비지예프스키는 니체의 철학에 심취해 있었고 피아노를 잘 쳤으며 쇼팽에 관해 특이한 해석을 했고 뭉크에 관한 최초의 논문을 쓴 것도 그였습니다.
뭉크, 스트린드베르크, 프시비지예프스키 이 세사람은 노르웨이 여인 다그니 유을을 두고 사각관계를 벌였습니다.
다그니는 뭉크의 어린 시절 친구로서 음악공부를 위해 베를린으로 유학와 있었는데 뭉크가 그녀를 ‘검은 돼지’로 데리고 왔습니다.
스트린드베르크와 프시비지예프스키는 첫눈에 그녀에게 반했고 뭉크를 포함하여 세 사람이 경쟁하듯 그녀를 사랑했지만 다그니는 1893년 프시비지예프스키와 결혼했으며 몇 년 후 로시아 청년의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마돈나>는 뭉크가 ‘사랑’이란 제목으로 연작을 제작한 것들 중 중심이 되는 작품이고 이 연작에 <절규>, <흡혈귀>, <키스>, <목소리>, <질투> 등이 포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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