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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규>는 1893년 서른 살때 판지에 유채, 템페라, 파스텔을 사용해서 그린 것입니다.
이 작품은 뭉크의 혼의 고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매우 내성적인 사람이 실재로는 소리를 지르지 못하고 그림을 통해 무언의 절규하는 자신의 모습을 담은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1893년이면 반 고흐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지 3년 되는 해인데, 반 고흐의 편지에서도 노이로제란 말이 언급되었듯이 이 시기에 현대사회에 대한 불안이 매우 컸습니다.
특히 예술가들이 문명에 대해 불안한 증세를 보였습니다.
폴 고갱은 이 시기에 남태평양의 섬 타히티로 떠났습니다.
뭉크가 불안을 참지 못하고 절규한 것은 당연합니다.
그는 반 고흐 그리고 고갱과 어울릴 만한 고독한 화가였습니다.
<절규>에서 뭉크는 자신의 모습을 만화처럼 과장하고 왜곡시켰으며, 몸을 S자 모양으로 비틀고 입을 크게 열고 눈을 크게 뜬 채 경악해 하는 자신을 담았습니다.
이것은 그의 자화상일 뿐 아니라 반 고흐와 고갱의 모습이기도 하며 당시의 불안한 모든 현대인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노이로제가 심화되어 나타난 현상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뭉크의 노이로제는 무엇인가 그는 왜 불안한 생을 살았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이 작품을 포함해서 그의 모든 작품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뭉크는 1895년에 <절규>를 채색석판화로 다시 제작하면서 “나는 끊임없는 절규가 자연을 관통하는 것을 느꼈다”고 적었는데 그는 그 날의 체험을 잊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절규가 자연을 관통했다고 믿었다면 이는 거의 신비주의에서 말하는 자연과의 합일을 의미합니다.
뭉크 자신 자연의 일부가 되었음을 체험한 것이란 말이지요.
그는 자신의 절규가 자연을 관통할 때 황혼의 하늘이 핏빛으로 넘실되는 것으로 착시현상을 일으켰습니다.
하늘이 진동하자 대지가 거친 호흡을 했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이는 개인적인 느낌입니다.
그는 느낌을 과장해서 표현한 것입니다.
회화는 궁극적으로 표현인데 그가 이 점을 표현주의가 공식적으로 표방되기 12년 전에 이미 이 작품을 통해 시위한 것입니다.
뭉크가 <절규>에 얼마나 애착을 갖고 있었던지는 동일한 제목으로 미디움을 달리 해서 제작한 것 말고도 변형시킨 작품의 수가 50종이 넘는 데사 잘 알 수 있습니다.
뭉크는 문학에 관심이 아주 많았습니다.
1909년에는 삽화를 넣은 그림 산문집 <알파와 오메가>를 만들었는데, 읽어보면 그가 화가이자 시인이었음을 알게 합니다.
그는 도스토예프스키와 키에르케고르의 저서를 탐독했으며 키에르케고르의 불안의 개념은 곧 뭉크의 심상을 나타낸 것이기도 합니다.
키에르케고르는 파스칼에 의해 사유된 불안이 인간을 사로잡는 까닭에 관하여 <불안의 개념>, <죽음에 이르는 병> 등을 통해 깊이 분석했습니다.
불안은 파악하기 어렵고 이에 집착하면 할수록 인간은 무기력해집니다.
뭉크가 소장한 책들 중에는 <니체 전집>과 14권의 <키에르케고르 전집>이 있습니다.
<절규> 외에도 뭉크의 작품 <절망> 그리고 <칼 요한 거리의 봄날 저녁>은 키에르케고르의 불안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습니다. 뭉크는 자신의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가면처럼 상징적으로 묘사하면서 모두가 불안을 나타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배경은 다리 위이거나 거리이지만 내면세계를 활보하는 자아의 모습으로 보아야 합니다.
내면세계에 대한 탐구, 잠재의식에 관한 관심, 자아에 대한 발견은 뭉크가 평생 심혈을 기울인 주제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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