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과 친구들> 중에서
라우센버그는 주위에서 쉽게 발견되는
라우센버그는 주위에서 쉽게 발견되는 물질들로 작품을 제작했는데 낯익은 물질들을 예술에 포함시키는 것은 팝아트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었다.
그는 예술가들의 제스처를 비인간적이라 보았고 예술 감각과 일상적인 실제 환경을 동시에 제시하면서 일찌감치 팝아트의 우수함을 보여주었다.
1959년 그는 좀더 진지한 작품을 제작하기로 결심하고 플로리다 주에 있는 어느 모텔 근처 창고에 틀어박혀 신문지와 잡지를 사용하여 단테의 지옥(Inferno)을 제작했다.
당시 단테의 모습은 잡지의 골프 클럽 광고에 사용된 적이 있었다.
그는 존스와 연락을 끊고 6개월 동안 고립된 생활을 하면서 작품제작에 전념했다.
쓰레기를 주로 사용하면서 거기에 미학적 내용을 담아 쓰레기들이 소비사회로부터 격리당한 상징으로서 작품에서 아이러니로 나타나도록 했으며 코카콜라 병, 동물인형, 자동차 타이어를 비롯해 버려진 물질들을 닥치는 대로 재료로 사용했는데 이것들은 팝 물질들이었다.
또한 쓰레기를 조립하면서 그것이 과거 초현실주의 작품에서 초현실적으로 나타난 것과 달리 요즈음 삶의 대중적인 이미지로 부각되기를 바랐다.
한편으로는 조립된 쓰레기들이 환상을 연출하여 물질들을 우스꽝스럽게 만들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그러나 이런 콜라주 구성이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시인이며 미술가인 독일사람 쿠르트 슈비터즈가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이러한 작업을 한 적이 있으며, 더 거슬러 올라가면 피카소가 버려진 나무 조각에 색을 칠하고 철사 줄과 깡통을 달아 〈기타〉(그림 51)라는 제목의 작품을 제작한 적이 있다.
라우센버그는 염소의 몸통에 타이어를 끼운 후 바닥에는 버려진 물질들을 콜라주하고 그 위에 추상표현주의의 빠른 붓질을 가해 〈모노그램〉(그림 31)이라는 제목을 붙여 1959년 레오 카스텔리 화랑에서 소개하여 다시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1960년대에는 실크스크린을 사용하여 만화경 같은 이미지를 창조하기도 했다.
이러한 방법은 당시 진보적인 방법에 속했고 그와 유사한 아이디어와 이미지를 추구하던 워홀을 비롯한 팝아트 예술가들의 지지를 받았다.
라우센버그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자 소원대로 커다란 화실을 장만하고 과학자 빌리 클루버와 함께 〈아홉 밤 Nine Evening: Theater and Engineerings〉을 준비했다.
기술부족으로 그 작품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예술가와 과학자가 협력했다는 의의를 남겼다.
곧이어 1960년대 후반에는 과학기술을 예술에 응용하는 방법을 실험했다.
1969년 그는 나사(NASA)의 초청을 받아 케네디 스페이스 센터로 가서 아폴로 우주선이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사람을 태우고 달에 착륙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암스트롱이 달에서 골프를 치는 장면은 아주 드라마틱하게 보였다.
그는 이 역사적인 사건에 감동하여 〈돌로 된 달〉이라는 제목으로 34점의 석판화 시리즈를 제작했다.
이 무렵 그의 화실이 화재로 전소되어 많은 드로잉과 그림이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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