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과 친구들> 중에서

라우센버그는 ‘혼용한 회화’를 소개했는데


라우센버그는 1954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빨간색을 주로 사용하여 그린 그림들을 이간(Egan) 화랑에서 소개했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좋아 그는 전람회를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불렀다.

라우센버그의 가장 두드러졌던 작품 〈Charlene〉(그림 28)은 여러 가지 물질을 과감하게 혼용하여 콜라주한 것으로 라우센버그는 그것을 ‘혼용한 회화(mixed painting)’라고 불렀다.
〈Charlene〉에서 그는 우산을 편 채로 캔버스에 부착시켰으며 낡은 사진과 심지어는 T셔츠까지도 작품에 포함시켰는데 과연 돈키호테와도 같은 순진한 용맹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듬해 제작한 〈인터뷰〉(그림 29)는 커다란 나무상자를 둘로 나눈 후 콜라주하여 색칠한 것으로 그림이라기보다는 벽에 붙인 조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라우센버그는 구태여 조각과 그림을 구별하려고 하지 않았다.
평면에서 약간 볼록하게 나오는 릴리프는 르네상스 시대 이후의 일반적인 경향이었지만 거의 조각과도 같은 3차원적 그림은 이 시기의 산물이었다.
표현을 위해서라면 장르와 장르의 구별도 무시함으로써 예술가의 자유는 더욱 확장되었는데 이것이 뉴욕 스쿨 1.5세들의 선택으로서 즉흥적인 표현에 충실하고 형식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던 것이다.

파리에서 화랑을 경영했던 이탈리아 사람 레오 카스텔리가 1957년 2월 57번가에 화랑을 열고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을 찾고 있었다.
그는 라우센버그와 존스가 장차 성공할 예술가들임을 알아채고 두 사람의 전람회를 각각 열어주었다.
1958년 1월에 열린 두 사람의 전람회를 비교해볼 때 존스에 비하면 라우센버그의 전람회는 덜 성공적이었다.
라우센버그는 ‘혼용한 회화’를 소개했는데 캔버스에 물질들을 잔뜩 갖다 붙인 그의 그림은 관람하는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사진, 인쇄물, 신문지를 캔버스에 부착하면서 드 쿠닝의 기분내키는 대로의 붓질을 혼용한 그의 과격한 행위는 유럽의 신사실주의와 유사했다.
신사실주의와 유사한 팝아트가 영국에서 먼저, 그리고 뒤따라 미국에서 성행했지만 그때만 해도 아직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때였다.
다시 말하면 라우센버그의 행위는 이른 팝아트라 할 만한 것으로 추상표현주의와 팝아트 사이의 교량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회화는 예술과 인생과의 관계다”라는 말로 자신의 작품을 설명했는데 이 말은 케이지의 말을 반복한 데 불과한 것으로 그가 얼마나 케이지의 영향을 받았는지를 시사하는 말이다.

1955년에 제작한 〈침대〉(그림 30)는 추문을 일으킬 만한 소지가 다분했는데 나무판에 베개와 이불을 붙이고 그 위에 추상표현주의의 빠른 붓질을 가한 것이다.
사람들은 전시장에서 이 작품을 보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회화의 영역이 도대체 어디까지 이를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은 예술가들이 예술이라는 미명 하에 방종하는 것은 아닌지 예술가들의 지성에 의심을 품기도 했다.
라우센버그의 말로는 이 작품을 제작할 때 마침 캔버스가 떨어져서 대신 이불을 사용했다는 것인데,
샤갈이 이불에 그림을 그린 적이 있어 그쯤은 이해가 되지만 베개를 부착한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으며 자위행위적인 기분내키는 대로의 붓질은 예술가의 방종으로밖에는 여겨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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