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과 친구들> 중에서
네오다다이스트 로버트 라우센버그
로버트 라우센버그는 재스퍼 존스와 함께 추상표현주의와 팝아트 사이에 교량 역할을 한 예술가로, 팝아트에서 본다면 선구자였으므로 워홀이 그의 친구가 되고 싶어 한 것은 당연했다.
라우센버그는 뉴욕에 거주하는 뒤샹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다다이즘을 부활시켰는데 이를 네오다다라 한다.
라우센버그는 1949년 가을에 뉴욕으로 가서 아트 스튜던츠 리그에 입학했는데 역사가 오랜 이 학교에 아실 고키와 폴록이 재학한 적이 있다.
이듬해 결혼한 라우센버그와 수잔 웨일은 커다란 크기로 청사진을 제작했는데 청사진은 이 시기에 몇몇 예술가들에 의해서 처음으로 실험되었다.
두 사람은 반윗 텔러 백화점의 쇼윈도를 장식했는데 이 백화점은 지금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당시에는 아주 고급백화점으로 스페인 사람 살바도르 달리가 쇼윈도를 장식하기도 했다.
1951년 4월 잡지 《라이프 Life》가 두 사람에 관해 보도하여 그들 부부는 널리 알려졌으며 그들의 청사진 한 점이 모마의 사진전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1952년 여름 케이지와 함께 작업하면서 케이지의 영향을 받아 극도로 간소화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캔버스 전체를 흰색으로만 그리거나 검정색으로만 그린 라우센버그의 그림들이 현재 솔로몬 구겐하임 뮤지엄에 소장되어 있다.
케이지와 함께 참여한 〈연극작품 1번 Theater Piece No. 1〉은 즉흥적인 연기로서 서로의 연기에 별로 관련이 없기 때문에 해프닝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무렵 라우센버그의 양성애가 분명해져서 수잔은 구역질이 나서 도저히 함께 살 수 없다면서 이혼을 요구하며 그의 곁을 떠났다.
그러자 라우센버그는 동성애자 시 툼블리와 함께 유럽 여행을 떠났다.
두 사람은 로마에 함께 머물다가 라우센버그 혼자 북아프리카를 여행하고 1953년에 미국으로 돌아왔다.
툼블리는 이 무렵 어린아이 또는 정신박약아처럼 낙서 같은 그림을 그렸는데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법과 유사한 그의 회화방법은 평생 달라지지 않았다.
뉴욕으로 돌아온 라우센버그는 풀톤 스트리트에 거주하며 케이지와 자주 만났으며, 안무가 머스 커닝햄을 위한 의상과 무대장식을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그가 재스퍼 존스를 만난 것은 1954년이었으며 두 사람은 곧 친구가 되어 함께 프리랜서로 백화점 쇼 윈도를 장식하는 일을 했다. 펄 스트리트에 있는 허름한 빌딩에 각각의 화실을 마련한 두 사람은 매일 만나 서로의 공통된 미학에 관해 토론하면서 함께 작업했다. 라우센버그는 자신의 일대기를 쓴 캘빈 톰킨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존스와 나는 서로가 서로에게 진지한 평론가였다.
내가 아이디어와 회화에 관해 의논한 화가는 존스가 처음이다.
아니, 시 툼블리가 첫 번째였다.
그러나 툼블리와 나는 평론에 관한 대화를 한 적은 없었다. 툼블리의 그림은 너무 개인적이었기 때문에 그가 그림을 다 그린 후에야 그와 대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존스와 나는 말 그대로 아이디어를 거래할 수 있었다. 존스가 내게 ‘엄청난 아이디어를 주마’라고 말할 때면 나는 그를 위한 아이디어를 찾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