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과 친구들> 중에서

뒤샹과 만 레이는 결함을 보완한 후


1920년 뉴욕에 있는 뒤샹의 아파트에서 만 레이가 목숨을 잃을 뻔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날 만 레이는 뒤샹이 발명한 〈회전하는 유리판〉(그림 22)의 제작을 돕고 있었는데 모터가 갑자기 빠른 속도로 회전하면서 산산이 흩어진 유리조각이 하마터면 만 레이의 목을 스칠 뻔했다.
뒤샹과 만 레이는 결함을 보완한 후 작품을 완성했다.
그것은 다른 크기의 직사각 형태의 유리판 다섯 개가 각각 회전하는 것으로 유리판 양끝에 검정색으로 칠한 부분이 모터에 의해 빠르게 회전할 때 광학적 효과를 내는 작품이었다.

뒤샹은 어려서부터 과학에 관심이 많았고 그러한 기질이 기계에 대한 관심을 부추겼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 레제는 브랑쿠시, 뒤샹과 함께 살롱 도톤을 관람하고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뒤샹에 관해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마르셀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무표정했다. 그는 말없이 기계와 프로펠러들 사이를 걸어 다녔는데 갑자기 브랑쿠시에게 ‘회화는 끝났다! 무엇이 이 프로펠러보다 나을 수 있겠는가? 넌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미술계는 그가 예술을 포기했다고 생각했지만 뒤샹은 1946년부터 20년 동안 〈주어졌을 때 : 1. 폭포 2. 조명용 가스〉(그림 23)를 자신의 마지막 대작으로 제작했다.
1960년대에 뒤샹의 이름이 다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라우센버그와 존스의 네오다다 행위와, 워홀과 리히텐슈타인 등의 팝아트 경향이 뒤샹의 미학과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네오다다와 팝아트 예술가들에게 별로 호감을 보이지 않았던 뒤샹은 취리히 다다 예술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한스 리히터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네오다다 예술가들은 자신들을 신사실주의 예술가들이라고 부르면서 팝아트 예술가들과 마찬가지의 쉬운 방법으로 다다처럼 행위한다.
내가 ‘이미 만들어진’ 물질을 사용한 것은 미학을 낙담시키기 위해서였다.
네오다다 예술가들은 나의 그러한 방법을 사용하여 거기서 미학적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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