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과 친구들> 중에서

뒤샹은 물의를 자초하며


1917년 어느 날 뒤샹은 배관공들을 위한 물품 상점에서 변기를 하나 구입했다.
그는 변기 제조업자 리처드 머트(R. Mutt)의 이름을 변기에 서명한 후 제목을 〈샘〉(그림 18)이라고 붙여 그해 뉴욕 앵데팡당전에 출품했다.
뒤샹이 의도했던 대로 이 작품이 심사위원들로부터 배척당하자 그는 이 사건을 크게 확대해 반사이익을 노렸다.
심사위원들 앞으로 편지를 쓰고는 편지의 내용을 친구들과 함께 창간한 잡지 《장님 The Blind Man》 제1호에 게재했다.
뒤샹은 변기 제조업자 리처드 머트를 자신을 지칭하는 은유적인 이름으로 사용하면서 편지에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분명히 어느 예술가라도 6달러를 내면 전람회에 참여할 수 있다.
리차드 머트 씨는 〈샘〉을 출품했다. 그런데 아무런 의논도 없이 그의 작품이 사라졌다.
머트 씨의 〈샘〉이 배척당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첫째, 사람들은 그것이 비도덕적이며 저속하다고 말한다.
둘째, 사람들은 그것이 표절이라고 말한다.

단순한 하나의 화장실 설비― 이제 머트 씨의 〈샘〉 ― 는 비도덕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누구든지 배관공들을 위한 상점의 진열장에서 매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머트 씨가 〈샘〉을 직접 자신의 손으로 만들었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는 그것을 선택했다.
그저 존재하는 평범한 생활용품을 선택하여 전시함으로써 새로운 제목과 새로운 견해 아래서 실용적인 의미는 사라졌다.
그는 새로운 개념을 창조한 것이다. 화장실 설비를 표절했다는 말은 부당하다.
미국이 만들어낸 유일한 예술품은 바로 이 화장실 설비와 교량들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뒤샹은 물의를 자초하며 전통 미학 자체에 대한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려고 했다.
1919년에는 레오나르도의 유명한 그림 〈모나리자〉의 모조품을 하나 사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상징하는 모나리자의 얼굴에 연필로 수염을 그려 넣어 다시 추문을 일으켰다.
그는 그것에 〈L.H.O.O.Q.〉(그림 19)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이를 프랑스말로 읽으면 Elle a Chaud au Cul로서 ‘그 여자는 뜨거운 엉덩이를 가지고 있다’라는 뜻이 된다.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은 그 작품을 보고 뒤샹이 환상의 실제를 창조한 것이라고 환호하며 반겼다.

뒤샹은 이따금 재미로 여장을 하고 타인행세를 했고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로즈 셀라비(Rrose Selavy)라고 명명했는데 셀라비란 ‘그것은 인생(C’est la vie)’에서 따온 말이었다.
만 레이는 뒤샹의 여장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는데 원래의 것은 없어졌으며 재생한 것이 지금 구겐하임 뮤지엄에 소장되어 있다(그림 21).
사진을 보면 뒤샹은 양손에 반지를 끼고 털목도리를 둘렀으며 얼굴에 화장을 했는데 실제 여자를 방불케 했다.
그의 원래의 모습은 마치 사기꾼이나 흉악범처럼 보이는데 여자로 분장했을 때는 아주 매력적인 여인처럼 보였다.

1923년 〈그녀의 독신자들에 의해서조차 벌거벗겨지는 신부〉(일명 큰 유리, 그림 20)를 제작한 후로는 서양장기에 전념하면서 예술을 등한시했지만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의 전람회 개최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큰 유리〉는 뉴욕에서 제작한 것으로 유리창처럼 생긴 것을 통해 내부의 조직을 볼 수 있도록 한 작품이다.
그는 철사 줄과 오일, 주석조각, 먼지를 사용하면서 호색적인 주제의 알쏭달쏭한 작품을 제작했는데 해석하는 사람들에 따라 의견이 분분했다.
어떤 사람은 기계예술의 이미지라고 했고 신비적 연금술적 상징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다.
가장 설득력 있는 해석으로는 시인 앙드레 브르통의 “사랑에 대한 기계적인 해석으로 사치스러운 교묘함이 있다”는 것이다.
〈큰 유리〉가 1926년 브루클린 뮤지엄(Brooklyn Museum)에서 소개될 때 운반 과정에서 실수로 유리가 깨졌는데 뒤샹은 1936년에 두꺼운 유리로 금이 간 유리를 덮으면서 구성이 ‘우연에 의해서’ 완성되었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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