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한 상태가 완성
 

  레오나르도가 피렌체 통치자 로렌초의 서클에 소개되었을 때 소외감을 느꼈을 것이다.
당시 그리스 고전 문화에 정통한 학자 조반니 아르지로폴로Giovanni Argyropolo가 1475년까지 피렌체에서 명강의를 했고 지식인들은 그의 강의에 매료되었지만 라틴어를 모르고 그리스어는 더욱 더 몰랐던 레오나르도가 그의 강의에 관심이 있었을 턱이 없었을 것이다.
레오나르도는 적었다.

“내가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주제넘은 몇몇 사람이 나를 가리켜서 교양 없는 사람이라고 비판할 수 있다는 점을 잘 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인간들인가! 그들은 마리우스Marius가 고대 로마 귀족들에게 한 것처럼 내가 그들에게 응답할 수 있다는 것을 정녕 모르는 것일까. 다른 사람의 작품에 관해 알고 있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그들이 나의 작품에 도전할 수 있을까? 문학에 경험이 없는 까닭에 내가 선택한 주제에서 나 자신을 표현하는 데 장애가 있을 것이라고 그들은 말할 것이다.”

비록 배우지 못했더라도 레오나르도에게는 직관이 발달해 있었다.
그에게는 자연이 스승이었다.
그러므로 배우지 못한 데 대한 열등의식이 그에게는 없었다.
그도 로마인의 조각과 저부조bas-reliefs를 보고 고대 미술을 알게 되었지만 고대의 장점이나 완전함을 부인했다.
그는 이따금 고대 미술에 관해 언급했지만 표준으로 삼지는 않았다.
그의 견해는 예술이든, 과학이든, 문학과 철학을 포함해 그 어떤 것이든 전적으로 자연으로부터 나아오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적었다.

ꡒ어느 누구도 딴 사람의 방법을 모방하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자연의 아들이 아니라 손자로 불리우기 때문이다. 자연적 형상들이 널려 있으므로 자연으로부터 습득한 사람을 마스터하기보다는 자연을 직접 똑바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ꡓ

레오나르도는 유행이란 지나가는 것이라면서 자신은 예술로 돈을 버는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로부터 영예와 자긍심을 기대하는 사람에게 주는 말이라고 했다.

레오나르도는 밀라노로 떠나기 몇 달 전 1480년경 제단화 <동방박사의 경배 Adoration of the Magi>를 위한 밑그림을 그렸다.
피렌체 인근 스코페토Scopeto의 상 도나토San Donato 수도회를 위해 제작한 것이다.
거의 2.5m(243-246cm)의 정사각형 크기로 초기 작품들 중 가장 외부의 영향을 받아 그린 것이다.
그는 작은 인물화가 아니라 수십 명이 등장하는 장대한 스케일로 구성했다.
여러 회화적 요소에 마음이 동요되는 15세기 특성이 나타나있지만 주요 대상을 부각시키는 방법이 새롭다.
보티첼리와 기를란다요도 <동방박사의 경배>를 그렸지만 두 사람은 사람들이 에워싼 가운데 마돈나가 별로 중요하지 않게 앉아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레오나르도는 처음으로 마돈나를 두드러지게 구성했으며 독립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마돈나와 주변 사람들의 대조는 그만이 할 수 있는 효과로 나타났다.
보통 화가들이 마돈나를 묘사할 때 다리를 넓게 벌린 자세로 옥좌에 앉아 있게 그린 데 비해 그는 두 무릎을 모은 섬세하고도 여성적인 자세로 표현했다.
이후 화가들은 레오나르도의 이 그림을 본받아 그렸다.

레오나르도는 관람자가 직감적으로 <동방박사의 경배>가 어떤 사건인지 알 수 있도록 그리면서 성서 기록에 제한을 받지 않았다.
루브르에 소장되어 있는 습작 드로잉을 보면 마구간, 소, 당나귀가 그려져 있음을 본다.
그가 전통 도상을 따랐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완성시킨 작품에는 이런 공현 축일의 전통적 요소들이 사라졌다.
여러 가지 요소들을 한 화면에 담는 15세기의 특성이 있지만 주요 대상을 부각시키는 방법은 레오나르도의 새로운 감각에 의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보티첼리와 기를란다요도 <동방박사의 경배>에서 사람들이 에워싼 가운데 마돈나가 앉아 있는 모습을 그렸지만 보통 이럴 경우 마돈나는 중요하게 보이지 않는다.
레오나르도가 처음으로 주요 주제를 두드러지게 부각되도록 화면을 구성한 것이다.
독립적이고 단순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마돈나와 그녀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 사이의 대조는 오로지 그만이 할 수 있었던 매우 효과적인 방식이다.

레오나르도는 3명의 나이 든 동방박사들이 감히 하느님의 아들에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조금 떨어진 데서 경배하는 장면으로 묘사했는데, 세 사람 모두 늙은 현인들로 수수한 의상에 겸허하고 지친 모습이다.
전설에 의하면 동방박사들 중 한 명은 발타사르Balthasar로 흑인으로 알려졌지만 레오나르도의 그림에는 모두 백인이다.
이 작품의 특이한 점은 마돈나와 아기 예수를 중심으로 주변 공간이 제대로 구분되지 않는 점으로 그렇기 때문에 어디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즉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장면으로 보인다.
그가 불필요한 상황의 세밀한 묘사를 생략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세 가지 예물 중 두 가지 향과 몰약을 바치는 것으로 제한했다.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한 드로잉 배경에는 낙타가 그려져 있지만 최종적으로 완성한 그림에서는 낙타가 없고 말 탄 사람의 모습이 보일 뿐이다.
배경에 종려나무와 쥐엄나무carob tree가 보이는데, 전자는 평화를 상징하는 나무이고 후자는 성 요한을 상징하는 나무이자 유다가 목을 매 자살한 나무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는 그 밖의 성서가 언급한 내용에 관한 상징물이 없다.
13세기에 멘데Mende의 주교 기욤 두랑Guillaume Durand은 ꡒ교회 안에 있는 그림과 장식은 평신도들을 위한 읽기이다ꡓ라고 했는데 레오나르도는 그런 의미로 이 그림을 그린 것 같지는 않다.
이런 회화적 동기는 일련의 그의 그 밖의 종교화에서도 나타난다.
성서에 대한 레오나르도의 해석은 교회의 입장과 사뭇 달랐다.
상단에는 말 탄 사람들이 서로 죽이며 전투를 벌이고 있어 고대 세계의 혼돈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으며 쥐엄나무 주변에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아는 무리가 놀라움과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구세주를 바라보고 있다.
이것이 성서에 대한 레오나르도의 해석이다.

상 도나토의 수도승들은 레오나르도의 이와 같은 특이한 작품을 마음에 들어 했지만 그들은 그가 속히 완성해주기를 바랐다.
1481년 6월 수도원은 계약서를 정정해서 레오나르도가 좀더 적극적으로 작업에 매진할 수 있도록 물감 사는 데 필요한 돈을 지불해주었다.
그는 경제적으로 매우 곤궁했다.
수도승들은 그가 수도원의 시계를 노란색과 파란색으로 칠하게 하고 장작 한 짐과 커다란 통나무 하나를 주기도 했다.
7월 수도원은 그에게 28플로린을 지불했고 여름이 끝날 무렵에는 밀 한 부셰르(약 2말)를 줬으며 9월 28일에는 붉은 포도주 한 통을 줬다.
이것이 수도원 기록부에 적힌 내용 전부이다.

레오나르도는 겨울이 다가올 무렵 더 큰 작업을 얻기 위해 밀라노로 갔다.
그가 <동방박사의 경배>를 거의 완성단계에까지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마치지 않은 건 매우 놀라운 일이다.
16세기를 대표할 만한 작품들 속에 낄 수 있는 독특한 구성의 이 작품을 그가 왜 완성시키지 않았을까 하는 점은 미술사를 공부하는 모든 이에게 의문시 된다.
이 작품에서의 동방박사들은 그의 <최후의 만찬>에서 사도들로 등장하게 되고 배경의 말 타고 전투하는 사람들은 25년 후에 그린 <안기아리 전투 Battle of Anghiari>에 등장하게 된다.
쥐엄나무 뒤에서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사람의 모습은 <세례 요한 John the Baptist>을 예고한다.
손가락을 위로 가리키는 매우 특이한 장면은 왼쪽 중앙 두 마리 말 사이의 사람의 모습에서도 볼 수 있다.
이 그림을 보고 필리포 리피, 기를란다요, 보티첼리가 감동을 받았고 특히 라파엘로가 영감을 받아 이런 요소를 스탄자 델라 세나투라Stanza della Segnatura에 프레스코화를 그릴 때 응용했다.
미켈란젤로도 마돈나 주변 어둠 속의 환각 상태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영감을 받아 이런 무리를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에 그린 것으로 보인다.

레오나르도가 왜 이 작품을 완성하지 않았을까? 이에 대해 바사리는 아주 간단하게 그가 ꡒ변덕스럽고 불안정했기ꡓ 때문에 완성할 수 없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ꡒ예술에 관한 지식이 많은 그는 많은 프로젝트를 의뢰받았지만 그 어떤 것도 완성시킬 수 없었는데, 자신이 생각한 완전함을 이룰 수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된다ꡓ고 했다.
바사리에 의하면 레오나르도는 문제가 ꡒ너무 난해하고 너무 기묘하므로ꡓ 재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오늘 날 일부 평론가들은 이 불완전한 상태를 완성으로 본다.
이 상태에서 이미 레오나르도의 의도가 명확하게 달성된 것으로 본다.
완성에 대한 르네상스 개념과 오늘 날의 개념이 매우 차이가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바사리가 말한 대로 레오나르도는 이 작품과 <성 제롬>을 미학적 문제에 봉착하자 완성하지 못한 것 같다.
수도원은 계약을 지키지 않았다고 이 작품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계약위반으로 그를 기소하지는 않았다.
바사리에 의하면 이 작품을 지네브라의 친척 아메리고 데 벤치Amerigo deꡑ Benci가 소유했다.
1481년은 레오나르도가 다른 예술가들과 더불어 바티칸에 초대되지 않았던 해로 아마 그의 최악의 해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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