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갱 빈센트 반 고흐를 만나다>

 <성난 고갱과 슬픈 고흐>(미술문화) 중에서


고갱이 반 고흐를 처음 만난 건 마르티니크에서 돌아온 직후인 1887년 늦가을 돈도 바닥나고 병든 몸으로 슈페네커의 집에 묵고 있을 때였다.
고갱이 반 고흐와 테오를 만난 곳은 몽마르트르 화랑이 아니면 페티 불바드 전시회였던 것 같다.
혹은 두 곳에서 연거푸 만났을 수도 있다.
반 고흐와 테오는 1887년 12월에 슈페네커의 집으로 고갱을 방문하고 그의 작품을 직접 보았다.
테오가 부소&발라동 화랑에서 작품을 팔아주겠다고 한 것이 고갱에게는 한 가닥 희망이 되었다.
테오는 12월 말경 고갱의 작품을 화랑에 진열하면서 피사로와 기요맹의 작품 옆에 걸었다.
이때 전시된 고갱의 작품은 1885~86년 디에페와 브르타뉴에서 그린 <목욕하는 브르통 소년들>과 근래 마르티니크에서 그린 풍경화 <오고가는 사람들, 마르티니크>, <목욕하는 두 소녀> 등이다.

그때만 해도 고갱에게 반 고흐 형제는 신이 보낸 사자와도 같았다.
테오가 부소&발라동의 몽마르트르 지사에 발령받아 온 건 1886년 봄이었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에 관심을 가진 그는 영향력 있는 딜러로 곧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커미션을 받는 조건으로 고갱과 거래하고 몇 주 안에 세 점에 대한 값으로 900프랑을 지불했다.
<목욕하는 브르통 소년들>과 다른 한 점은 팔기로 하고 구입한 것이지만, 네 사람이 있는 풍경화 <망고 따기, 마르티니크>는 자신과 형이 수집하려고 구입했다.
반 고흐 형제가 많은 돈을 주고 작품을 구입하기는 이때가 처음으로 <망고 따기, 마르티니크>를 함께 사용하는 아파트의 응접실 소파 위에 걸었다.
고갱은 반 고흐에게 자신의 작품과 반 고흐의 작품을 교환하겠다고 약속했다.
고갱은 반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 두 점을 받고 1887년 여름에 그린 <연못가에서 At the Pond>를 반 고흐에게 주었다.
반 고흐는 <망고 따기, 마르티니크>와 <연못가에서>를 매우 소중하게 여겼다.
특히 <망고 따기, 마르티니크>가 마음에 들어 에밀 베르나르에게 그 작품이 “대단히 수준 높은 시”라고 했으며, 고갱의 작품에는 “부드럽고 놀라운 기질”이 나타나 있고 시각적 즐거움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심장으로 느낄 수 있는 “삶의 철학”이 담겨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반 고흐는 파리에서 베르나르와 툴루즈-로트레크와 어울렸지만 두 사람의 작품에는 호감을 가진 적이 없었다.

테오는 훌륭한 화가는 자연을 모방하거나 본 대로 모사하지 않고 자연과 대화하며 관람자로 하여금 스스로 바라보게 만든다고 했으며, 형과 마찬가지로 “고상한 시는 고통 속에서 탄생한다”면서 고갱을 이런 부류의 화가라고 했다.
반 고흐는 장 프랑수아 밀레를 그의 시대의 최고 화가로 꼽고 고갱을 동시대의 최고 화가로 꼽았다.
테오는 드가를 동시대의 최고로 밀레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화가로 꼽았지만 반 고흐는 동생과 의견을 달리 했다.
반 고흐는 인간이 처한 상황이 미술에서 가장 훌륭한 주제가 되고 미술가의 최대 과제는 우리가 사는 생의 슬픔과 기쁨을 역사적 맥락에서 구현하는 가운데 희망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았으므로 드가를 칭찬에서 제외했다.

이 시기에 테오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는데 형에게 매달 평균 200프랑에서 300프랑을 주고, 고갱에게는 매달 작품 한 점을 받고 150프랑씩 지불하기로 했다.
돈이 떨어지면 슈페네커와 메이어 드 한에게 빌려 쓰던 고갱에게 테오가 매달 지불하는 돈은 매우 요긴했다.
테오는 고갱에게 형과 함께 아를에서 지내도록 권유했지만 그것은 사실 반 고흐의 아이디어였다.
테오는 형의 제안에 동의했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고갱을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구제하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테오는 고갱이 빚더미 위에 올라앉아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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