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곤 실레의 예술이냐 외설이냐>

 <뭉크, 쉴레, 클림트의 표현주의>(미술문화) 중에서


실레는 사춘기에 접어들기 이전의 소녀들에게 관심이 많았고 눌렝바하의 비행소녀들이 실레의 작업실에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소녀들은 어머니의 감시를 피해 몰래 실레의 작업실에 가서 모델이 되었으며 이 일이 알려지자 동네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실레가 소녀들을 끌어들여 춘화를 그려 판다고 경찰에 고발했다.
경찰관이 실레의 작업실을 수색했을 때 백 장도 넘는 에로틱 드로잉이 벽에 꽂혀 있거나 쌓여있었다.
<가두리 장식이 달린 담요 위의 두 소녀 Two Girls on a Fringed Blanket>와 <두 여인 Two Women>은 터부시되고 있는 레즈비언의 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이라서 보는 이를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경찰은 소녀들을 유혹한 죄로 실레를 유치장에 가두고 조사에 들어갔다.
1912년 5월 2일 라이헬이 뢰슬러에게 보낸 편지에서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실레는 열나흘 째 유치장에 감금되어 조사를 받고 있는 중입니다.
베네슈가 그를 방문했습니다.
실레는 눌렝바하의 유치장에서 매우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그곳은 지독한 곳이지요.
그는 성 폴텐에 있는 지역재판소에 불려갔으며 … 편지를 쓰거나 받는 것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동네사람들은 그가 드로잉들을 벽에 걸어놓았고, 그것들을 학생들에게 보여주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베네슈는 판사가 그에 대한 고발에 호의적이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두 주 후에 열린 재판에서 판사는 소녀들을 유혹하고 유괴했다는 기소에 대해서는 기각했지만 에로틱한 드로잉을 소녀들에게 보여준 것은 유죄로 판결했다.
이 죄에 대한 최대 형량은 6개월 동안 중노역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판사는 실레의 회화에 호감을 나타내어 그를 구해주는 제스처로 재판과정에서 에로틱한 드로잉 한 점을 불에 태운 후 사흘 동안 구금한다는 판결문을 낭독했다.
그는 모두 21일 동안 구금되었다가 풀려났다.
회화에 대한 판사의 이해로 실레는 운 좋게 가벼운 벌을 받게 된 것이다.
미성년자들을 유혹했다고 기소되었다면 최대 형량은 20년 동안 중노역을 하는 것이다.

실레는 예술적으로 천재인 자신이 구금된 것에 대해 매우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희생양이 된 것이며, 심지어 예술을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고통 가운데 위대한 예술이 탄생될 수 있다고 믿었으며, 대중의 조소가 자신이 천재임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건을 통해서 그는 자신이 매우 중요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가 유치장에서 쓴 일기를 보면 이런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같은 일이 미술가의 조국 오스트리아에서 발생한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에로틱하다는 점을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에로틱한 작품에 예술적 독특함이 있다면 그건 외설이 아니다. 그것이 외설이 되는 건 단지 관람자가 더러운 인간일 때에만 그러하다”고 적었다.
그는 또 다음과 같이 적기도 했다.
“나는 인간이 성적 느낌을 가지는 한 성적 고문을 겪어야만 한다고 믿는다.”

이 사건은 빈에 이내 알려졌으며 따라서 실레는 더욱 더 유명해졌다.
사실 그는 에로틱한 그림을 많이 그려왔고 그런 그림들만을 구매하는 컬렉터들도 있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춘화라고 하는 소문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이후 실레는 지나치게 에로틱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자제했다.
뢰슬러가 회상하기를 어느 날 실레를 방문한 한 변호사가 드로잉 몇 점을 구입하면서 “제게 보여준 것보다 더 진한 것이 있을 것으로 압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변호사는 좀더 선정적인 누드를 원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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