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구입

 <프랑스 미술 500년>(미술문화) 중에서


이제 미술품을 소장하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통로로 수입해야 했다.
프랑스 왕 루이-필리프는 스페인 미술품을 구입하기 위해서 1835년 말 바롱 타일러를 스페인으로 보냈다.
타일러는 1837년까지 스페인에 머물면서 중세로부터 동시대 화가 고야에 이르기까지 약 85명의 작품 412점을 구입하는 데 132만 7천 프랑을 지불했다.
이에 대해 알렉산더 뒤마는 1837년 『라 프레스』에 “왕은 프랑스 국민에게 스페인 회화가 있는 대규모의 전시관을 선물로 주고 싶어 했는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대가들의 것이지만 유명하지 않은 작품들로 채웠다”라고 썼다.
타일러는 자신이 구입한 미술품들이 마르세유로 떠나는 프랑스 배에 선적되는 것을 본 후 런던으로 가서 그곳에 있는 스페인 화가들의 작품을 더 구입했으며 무리요의 <돈 안드레스 데 안드라데 이 라 칼>316은 이때 구입한 것이다.
타일러가 구입한 작품들은 1837년 소수의 이탈리아와 북유럽 화가들의 작품들과 함께 루브르에 전시되었으며 루이-필리프는 1838년 자신의 소장품을 정부에 기증하여 1838년 1월 7일 루브르의 스페인 전시관을 통해 일반인이 관람할 수 있게 했으며, 스페인 전시관은 프랑스 미술 발전에 괄목할 만한 기여를 했다.

1842년 영국의 컬렉터 스탠디시 경이 루이-필리프에게 자신의 컬렉션 220점을 유증했으므로 숫자에 있어서 루브르는 프라도가 소장한 작품보다 많게 되었다.
이 시기에 파리뿐 아니라 베를린·부다페스트·드레스덴·런던·뮌헨·상트페테르스부르크·빈 등에 국립 컬렉션이 생겨났는데, 루브르 뮤지엄의 전신인 나폴레옹 뮤지엄의 설립과 내셔널리즘의 대두에 자극을 받아 유럽 각지에 생겼다.
미술품의 소장은 그 나라의 문화를 상징하는 지표가 되었다.
시인 샤를 보들레르는 루이-필리프의 스페인 전시관을 스페인 뮤지엄이라고 불렀다.
루이-필리프는 1848년 2월 혁명에 의해 퇴위하여 영국으로 망명했고 1850년에 타계했다.

이 시기에 작품에 대한 감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루이-필리프의 스페인 전시관은 열아홉 점의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고 전시했지만, 훗날 열아홉 점 모두 벨라스케스의 작품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수르바란의 작품은 <소틸로에서의 크리스천과 무어인의 전투>303, 현재 그레노블 뮤지엄에 소장된 <동방박사의 경배>, <성녀 루시>317와 <성녀 카실다>를 포함하여 성녀 시리즈, <명상하는 성 프란체스코>154를 포함하여 무려 80점이나 소장했으므로 루브르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엘 그레코의 작품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와 두 기증자>318와 ‘엘 그레코 딸의 초상’으로 불리기도 하는 <모피를 두른 숙녀>319를 포함하여 8점을 소장했는데, 파리의 뮤지엄으로는 최초로 그의 작품을 소장하는 것이었다.

고야의 작품은 타일러가 직·간접적으로 고야의 아들 야비에르를 통해 구입했으며 <발코니에 있는 마하들>269, <대장간>268, <늙은 여인들(시간)>320등이 포함되었다.
고야를 위해서는 전시실이 따로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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