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의 <풀밭에서의 점심>  

김광우의 <마네의 손과 모네의 눈>(미술문화) 중에서


1865년 봄 마네와 나란히 작품을 선보인 살롱전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모네는 마네의 <풀밭에서의 점심>에 버금가는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에 다시 샤이로 갔습니다.
그곳을 <풀밭에서의 점심>을 위한 배경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예비 스케치에 들어갔습니다.
습작에 1866년이라고 적었지만 1865년에 그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는 샤이에서 한 예비 스케치를 가을에 파리의 화실에서 채색했습니다.
기념비적인 이 작품은 사진을 참조해 그린 것으로 추정되며 12명이 등장하는 피크닉 장면입니다.
모네는 사람 하나하나를 습작으로 연구하면서 그림 전체에 대한 구성을 시도했는데 중앙에 왼팔을 내밀어 접시를 권하는 여인의 모습만이 예외로 그녀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행위를 하는 게 아니라 그저 그 자리에 있을 뿐입니다.
사람들이 대화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포즈를 취하는 것도 아니며 서로 시선을 주고 받는 것도 아닙니다.
피크닉을 위해 마련한 점심이 화면 중앙에 펼쳐진 것이 전부입니다.

그림에는 빛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빛이 나무 아래로 쏟아졌고, 따라서 명암이 분명하게 화면 전체에 나타났습니다.
모네의 관심은 모델들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빛이 사람과 자연에 어떻게 작용하는가 하는 데 있었습니다.
빛은 나뭇잎에 닿아 푸른 색과 금빛으로 아롱졌습니다.
빛이 사람들의 머리와 어깨에 닿아 눈부시게 나타나는 걸 그는 강조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작업은 미완성으로 그쳤습니다.

쿠르베가 그림을 비평하고 돌아간 뒤 모네는 1866년 살롱전에 출품하기로 한 계획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쿠르베는 너무 크게 구도를 잡은 그림이라서 야외풍경화라고 하기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림의 남자들 대부분은 바지유를 모델로 한 것이며 중앙에 앉아 있는 수염난 남자는 쿠르베로 보입니다.
<풀밭에서의 점심>에 여인이 여러 명 등장하지만 이는 모두 카미유 한 사람을 모델로 한 것입니다.
18살의 카미유는 모네의 애인입니다.
훗날 왜 단 두 명의 모델로 여러 사람을 묘사했느냐는 질문에 모네는 두 사람밖에 모델을 구할 수 없었고 돈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개개인의 인물에 대한 성격을 나타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두 사람으로 족했던 것입니다.
부분 습작들을 보면 바지유의 수염난 모습과 수염을 깎은 모습 모두를 볼 수 있어 그가 일정한 기간을 두고 작업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20년 모네의 화실을 찍은 사진을 보면 <풀밭에서의 점심>이 벽에 걸려 있습니다.
이 작품은 오랫동안 방치되었으므로 왼쪽과 오른쪽 부분이 손상되어 그 부분들을 잘라내야 했습니다.
1920년 80회 생일을 맞아 자신을 방문한 사람에게 모네는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마네의 그림을 따라서 그렸다네.
대부분의 화가들이 그러했듯 야외에서 그림을 구성한 후 화실에서 완성했어.
난 이 그림을 아주 좋아하는데 미완성이며 많이 상해 있어.
세 얻은 방의 보증금 대신 이 그림을 집주인에게 맡긴 적이 있었는데 집주인은 캔버스를 둘둘 말아 지하실에 쳐박아 두었지 뭐야.
돈이 생겼을 때 그 그림을 도로 찾아 왔지만 그림이 조금 상한 상태이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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