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으로 피어난 모네


물 위의 정원

클로드 모네가 55세이던 해인 1895년은 ‘모네의 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부와 명성을 한꺼번에 획득한 생애 최고의 해였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우리 속담이 바로 모네에게 해당되는 경우입니다.
회화라는 밭을 약 30년 동안 정성들여 경작하고 가꿔서 풍성한 수확을 거둔 것입니다.
날씨의 변화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대성당의 모습을 색을 달리 하여 시리즈로 그린 작품들이 미국의 보스톤과 시카고, 런던에서 소개되었으며, 파리의 오르세이 미술관에서도 5점이 소개되었습니다.
1876년에 2백 프랑이던 그림가격이 1890년대 초에 3천 프랑, 1895년에는 다섯 배로 뛰어 1만 5천 프랑, 1921년에는 무려 20만 프랑으로 껑충 뛰었답니다.
1천 프랑이 오늘날 우리 돈으로 약 백만 원에 해당하므로 20만 프랑이면 2억 원에 해당합니다.
모네의 경제사정은 좋아진 정도가 아니라 재벌의 호화스러운 삶으로 달라졌습니다.
그는 지베르니 큰 저택에 딸린 과수원을 5명의 정원사를 고용하여 연못으로 개조한 후 수련을 심고 연못 중앙에는 일본식 둥근 다리를 놓아 연못을 건널 수 있도록 했습니다.
수련은 파리에서 미술품을 사고 파는 사업을 하는 일본인으로부터 구한 것들입니다.

흔히 재능을 타고난다고 말하지만 모네의 생애를 돋보기를 들고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그에게는 타고난 재능이 없었고 노력하고 또 노력했을 뿐입니다.
타고난 재능 혹은 우수한 지능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이 있지만 이는 소수에 불과하고 역사에 업적을 남긴 훌륭한 인물들은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더욱 더 노력하는 자세로 끝내 신념을 실현시켜서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역사에 모범이 되는 인물로 칭송을 받았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우량의 지능을 갖고 태어난 행운아들 중에는 나태하거나 어려움이 닥치면 신념을 버리고 포기하여 오히려 평범한 사람보다 못한 처지로 뒤쳐진 인물도 상당수 있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공은 오로지 노력에 의한 것이라는 교훈을 알게 됩니다.

모네의 어머니는 모네가 16살 되던 해 돌아가셨습니다.
모네는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모습을 노트북에 만화처럼 과장해서 그리기 좋아했고 장차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완강하게 반대했습니다.
아버지의 사업이 부진하여 모네는 고모의 집에서 살았는데 고모는 아마추어 화가였기 때문에 물감을 사주면서 마음껏 그림을 그리게 해주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돈을 내고 회화를 배울 수 없는 처지라서 모네는 스스로 회화를 익히기 위해 야외로 나가 풍경화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이 스승이었습니다.
자연은 같은 나무 같은 바다도 늘 같은 색으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해가 뜰 때,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 또는 해가 질 때 나무와 바다는 다른 색이 됩니다.
모네는 이런 자연의 변화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모습을 그때 그때 본 대로 캔버스에 재현하는 작업을 지속한 끝에 프랑스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의 화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20세기가 막 시작할 무렵 당대의 사람들은 조각하면 오귀스트 로댕을 꼽았고 회화에서는 모네를 제1인자로 꼽았습니다.


구름다리가 모네의 그림에 나타나기 시작한 건 1899년부터였습니다.
연못을 그는 “물 위의 정원”이라고 불렀습니다.
1901년에는 근처에 있는 가로세로 4km나 되는 땅을 더 구입하여 정원을 확장하면서 연못도 더욱 크게 해서 물 위의 정원은 네 배로 커졌습니다.
연못가에는 대나무와 일본 사과나무 그리고 체리나무도 심었습니다.

회갑을 넘긴 그는 외출할 기력도 없을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아 갖가지 꽃으로 가꾼 정원에서 마지막 대작에 전념했습니다.
그는 정원사들에게 온실을 만들게 하고 꽃의 종류를 늘렸으며 잡지와 백과사전을 통해 꽃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스케치한 꽃의 종류와 원예가들에게 주문한 목록을 보면 꽃에 대한 그의 열정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원예잡지를 열렬히 애독했고 친구들이 요청하면 원예가의 주소를 알려 줄 정도로 이 분야에 박식해졌습니다.
당시 파리에는 외국과의 교역이 자유로웠으므로 여러 나라에서 수입한 각종 희귀한 꽃이 많았답니다.

모네는 일본 회화에 관심이 많아 뒤랑-뤼엘의 화랑에서 우타마로와 히로시게의 판화를 수년 동안 구입해왔습니다.
1893년 뒤랑-뤼엘 화랑에서 개최한 일본 다색판화전을 보고 그는 감동했습니다.
그는 1899년부터 수련을 중점적으로 그리기 시작해 1900년에 최소 20점 그렸으며 2년 후부터는 정사각형 캔버스에 그리기 시작했는데 캔버스의 사이즈에도 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 흡족할 때까지 치밀하게 파고드는 성격이라서 그는 정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면서 수련과 꽃을 수없이 그리고 또 그렸습니다.
1900년 말 그의 최근작 25점이 뒤랑-뤼엘의 화랑에서 소개되었는데 절반 가량이 연못에 있는 수련 그림이었답니다.
같은 장소에서 일기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수련을 그렸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유사한 것이 많습니다.
아침에도 그리고 저녁에도 그리고 또 계절따라 그리기 때문에 언듯 보면 같아보이지만 색이 다른데 바로 이 점이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어 한 자연의 다양한 모습입니다.
자연이 얼마나 변화무쌍한지 안다면 우리는 그의 작품에 아주 가까이 가서 그가 무엇에 열중하고 그렸는지 알 수 있으며 율동적인 색을 통해 그가 어떤 회화적 의도로 화면을 구성했는지 읽어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대가의 작품 앞에 오래 서서 바라보는 건 예술적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달리 했기에 새로운 시각으로 사물의 아름다움을 드러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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