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피리님, 

<폴록과 친구들> 그리고 <워홀과 친구들>을 읽으셨다니 감사합니다.
<폴록과 친구들>은 뉴욕에 거주할 때 쓴 책으로 나의 처녀작입니다.
폴록이 살던 집에도 가보았고,
폴록의 무덤에도 갔었습니다.
그의 무덤이 있는 묘지는 예술가들의 정원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곳에는 많은 시인, 화가, 조각가, 영화제작자들이 묻혀 있는데,
묘비도 각기 다르고 묘비에 적힌 글도 생전의 뽐냄이 베어 있습니다.
폴록의 무덤 앞에는 친구들이 갖다놓은 커다란 바위가 있고 바위에 조그맣게 그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그 앞에는 퍽 후에 타계한 아내 크래스너 리의 무덤에는 작은 돌이 있습니다.
묘비의 크기만큼 두 사람이 회화에 끼친 영향이 크고 작습니다.

<워홀과 친구들>을 쓰게 된 건,
미국 미술을 이해하는 가장 지름길은 폴록, 워홀, 뒤샹 세 사람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후속편으로 쓴 것입니다.
워홀은 소위 말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수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렇게 인정받는 이유는 그가 가장 평범한 것을 미술품으로 변형시켰기 때문입니다.
비누상자에 불과한 <브릴로 상자>를 전시함으로써 그림이란 대상에 대한 모사가 아니라 대상 그 자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으며,
수퍼마켓에 진열된 가장 평범한 비누상자라도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줌으로써
약 2300년에 걸친 서양사람들의 회화에 대한 관념을 단번에 휴지통 속에 챠넣고 새로운 미술의 지평을 열었기 때문입니다.

혁명이 한 사람의 생각에서 출발하는 것처럼
미술사의 변혁이 워홀 한 사람의 행위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미술이 달라지는 건 그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기 때문입니다.
문학에서 시가 달라지는 것 그리고 음악에서 곡이 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로서 그 시대가 다른 시 다른 곡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역사가 늘 새로운 것을 원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것이 무엇일까?
나는 마술피리님이 한 말이 바로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늘 자유를 그리워하였으나
그 자유에도 여러 단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예술가들은 진정한 자유를 구가하는 사람들입니다.
창작이 바로 자유에 대한 표현인 것입니다.
그리고 자유에도 단계가 있습니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영화가 있었습니다.
장기수 한 사람이 있었는데, 
젊어서 감옥에 갇힌 후 늙었습니다.
그는 감옥생활에 아주 익숙해졌고,
그가 말한 대로 감옥 안에서는 불편을 못느꼈습니다.
그는 출소했습니다.
너무 오래 사회를 떠나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사회는 두려운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수퍼마켓에서 허드래일을 하며 사회에 적용하려고 했지만 그는 포기하고 목매어 자살했습니다.
그는 자유를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에는 비전향장기수가 있습니다.
공산주의를 부인하는 각서를 쓰면 사회에 나올 수 있는데,
거부하고 감옥에 스스로를 고립시킨 사람들입니다.
역설로 들리겠지만 그들은 자유를 선택한 것입니다.
사상의 자유를 선택한 것이지요.
공산주의를 부인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자유를 구속하는 것입니다.
물론 서슬퍼렇던 박정희 독재시절 때의 일로 그들이 보기에는 박정희 독재보다는 공산주의가 더 자유롭다고 판단한 것이지요.
그리고 순순히 각서를 받아내려고 한 것이 아니라 전두환 때 고문과 억압으로 억지각서를 받아내려고 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자유에 대한 그들의 선택은 인정해주어야 합니다.

분명 자유에 단계가 있습니다.
모짜르트는 성장한 후 자신에게 음악의 영향을 강요한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정신적인 구속에 대한 반발입니다.
예술가들은 최대한의 자유를 원합니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육체적으로 편했던 장기수가 출소하여 모든 걸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삶이 얼마나 버거웠던지 자살한 영화처럼,
노예근성이 있는 사람에게는 자유가 오히려 두려울 수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가 시키는 대로만 행동하는 사람에게 스스로 알아서 행동하라고 주문하는 건 그 사람을 곤경에 처하게 만드는 일이 될 것입니다.
남편에게 아내에게 시키기만 한 사람에게 반대로 이래라 저래라 하면 그 사람은 못견딜 것입니다.

예술가들은 사회에 대고 이래라 저래라 시키기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어찌 보면 굴레 벗은 망아지들인데,
망아지들의 자유를 굴레에 메인 망아지들은 부러워한답니다.
스스로 굴레를 벗어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굴레 벗은 망아지가 매우 자유스러워 보일 것입니다.

자유의 단계를 한층 높이는 것은 스스로에게 무엇이 굴레인지를 알아서 하나씩 벗어버리는 것입니다.
일종의 반항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지속적으로 그리고 머리를 써가며 반항해야 합니다.
가능하면 반항이라는 걸 상대가 느끼지 못하게 기술적으로 반항해야 합니다.
반항에 승복할 수밖에 없도록 지능적으로 반항해야 합니다.
성공한 예술가들은 이런 식으로 반항한 사람들입니다.
어리석은 예술가들은 노골적으로 또는 반항을 위한 반항을 하다가 좌절합니다.

자유의 단계가 아주 높았던 원효대사는 중의 신분이지만 생선을 구워먹고 제 할 말 다하지 않았습니까?

마술피리님,
이 사이트에 많은 글을 남기시기 바람니다.
올리는 글을 꼭 챙겨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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