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 쉴레, 클림트의 표현주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유럽은 19세기 말 정치적·사회적으로


유럽은 19세기 말 정치적·사회적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산업혁명과 경제 시스템이 현대화를 촉진하면서 중산층이 확산되었고 이들은 새로운 질서를 요구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문화 전반은 소수의 귀족 중심으로 형성되어 이들에 의해 수립된 가치체계가 중산층에게도 강요되었다.
중산층 지식인들은 이 같은 봉건적 문화의 세습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새로운 문화를 추구하며 정치적·사회적 변혁을 요구했다.
20세기로 넘어가는 유럽의 길목에는 이와 같이 선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었다.
부르주아와 중산층의 첨예한 갈등은 문화 전반에 걸쳐 변혁의 발판을 마련했으며 새로운 문화 창출을 위한 필연적인 과정을 밟게 된다.

고루한 사회에 대한 문인·철학자·예술가들의 날카로운 비판이 대중으로 하여금 전통으로부터 자유롭게 했으며, 문학과 철학에서 일어난 사상 혁명은 미술에서도 변혁의 물꼬를 텄다.
미술에서의 변혁은 파리에서 먼저 일어났다.
1874년 모더니즘을 알리는 인상주의전은 전통과 단절하고 새 시대를 여는 분기점이 되었다.
모든 모던 아트 책이 인상주의에서 시작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인상주의를 시작으로 모더니즘에는 많은 미술운동이 발생했다.
여러 예술가 그룹에서는 선언문을 만들어 새 패러다임이 될 만한 미술을 자신들이 창조했다고 주장했다.
모더니즘을 선언문의 시대라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모더니즘에서 상징주의·야수주의·표현주의·미래주의·신객관주의·다다주의·초현실주의·조형주의·신고전주의·추상표현주의·팝아트·미니멀리즘·개념주의 등이 특히 두드러졌다.

모네를 중심으로 전개된 인상주의는 기계적 기술에 반발하여 미적 기술을 표방한 운동으로, 카메라 발명 이후 회화의 개념을 다시 규정하려는 화가들의 집단적인 움직임이었다.
인상주의자들은 빛에 의한 대상의 시각적 변화에 집착해 색을 잘게 토막 내서 사용했다.
선을 추구한 사실주의에 반발하여, 인상주의는 빛의 반사법칙에 따라 대상을 분열시키는 착색으로 혁명을 꾀했지만, 이는 과학에 근거한 사실주의 그 이상이 못 되었으며, 선에 의한 모방을 색에 의한 모방으로 탈바꿈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카메라의 초점을 맞추지 않고 사진을 찍으면 인상주의 회화와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고대 그리스인으로부터 제기된 이래 이천 몇 백 년 동안 ‘예술은 모방 mimesis’이라는 관념을 모범답안으로 여겨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Nicomachean Ethics』에서 사람의 본성은 자연을 모방하고, 자기가 모방한 것을 보며 즐거움을 느끼고, 흉칙한 모습을 그렸더라도 그것을 보고 즐거움을 느낀다고 했다.
예술이 ‘자연의 모방’이란 그의 견해는 유럽 예술의 축을 이루는 전통으로 확고해졌다.

아트(Art)라는 말이 단지 모방이라는 개념을 넘어서 순수미술 Fine Arts (Beaux-arts)의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에 와서였다.
19세기 중반 카메라의 발명으로 ‘회화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을 따지는 문제가 더욱 시급하게 제기되었다.
한 치도 틀림없이 대상을 모사하는 회화의 기술적 모방이 카메라의 발명으로 존재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따라서 회화의 존속을 위해서는 새로운 정의가 요구되었다.
회화는 자신의 역할을 사진에 내주고 종말을 고해야 할 위기에 처했다.
화가가 카메라의 눈처럼 대상을 정확하게 모사해야만 한다면, 이는 칸트가 『판단력 비판』에서 말한 기계적 기술일 뿐 미적 기술은 아니다.

반 고흐는 편지에서 친구의 초상을 어떤 식으로 그리려고 했는지 설명했다.
최초의 단계에서는 닮게 그리지만 일단 ‘정확한’ 초상을 그린 뒤에는 색채와 배경을 변화시키기 시작한다고 썼다.

나는 아름다운 금발을 과장한다. 오렌지색·크롬 옐로·레몬옐로를 칠하고 머리 뒤쪽으로는 평범한 방의 벽이 아니라 무한의 공간을 그려 놓는다.
팔레트에서 끌어낼 수 있는 가장 강렬하고 선명한 파란색으로만 단순한 배경을 만든다.
이 선명한 파란색을 배경으로 금발의 빛나는 머리는 창공의 별처럼 신비스럽게 두드러져 보일 것이다.
아아,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과장됨을 만화로밖에 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문제가 되랴?

반 고흐는 표현이란 말 대신 과장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런 가능성을 더욱 깊게 탐구한 화가가 바로 뭉크였다.

‘회화는 표현이다’라고 말할 때 ‘예술은 모방이다’라는 오래된 예술의 정의가 부정될 수 있다.
표현이 하나의 사조 ism가 된 것이 좀 이상한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특별히 ‘표현’을 예술의 본질로 탐구하게 된 것은 예술을 단지 모방으로 본 서양미술의 편협한 사고를 부정한 혁명적 성과라 하겠다.
표현주의는 20세기에 피어나 예술 전반에 걸쳐 가장 혁명적 이념으로 부상했으며 오늘날에도 미래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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