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갱, 인상주의 화가로 활약하다>

<성난 고갱과 슬픈 고흐>(미술문화) 중에서


피사로는 고갱에게 대상을 한 장소에서만 관망하지 말고 왼편이든 오른편이든 옆에서 바라보는 장면으로 그리라고 권유했다.
그런 식의 구성은 일본의 무로마치室町 시대부터 에도江戶 시대 말기(14~19세기)에 서민생활을 기조로 제작된 회화 양식인 우키요에浮世繪의 대표적인 인물들 가츠시카 호쿠사이(1760~1849)와 안도 히로시게(1797~1858)의 판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당시 많은 프랑스 화가들이 판화 복사본을 통해 일본화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인물이 부차적으로 중요한 풍경화와 역사화를 주로 그린 호쿠사이는 1826~33년에 <후지 산 36경>을 완성했는데, 이 역작 판화는 후지 산을 배경으로 다양한 삶의 현장을 묘사한 것들이다.
소방대 감독관의 아들로 태어난 히로시게는 호쿠사이만큼 뚜렷한 개성으로 주목받은 화가는 아니지만 차분한 방식으로 그에 버금가는 걸작을 남겼다.
그는 일본 통속화의 전통을 좇아 온화하고 시적인 독특한 풍경화를 창안해냈다.
마네, 모네, 드가, 반 고흐를 포함하여 아주 많은 화가들이 일본화의 영향을 받았으며, 특히 모네의 대성당, 포플러, 건초더미, 수련 연작은 호쿠사이의 연작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1879년은 고갱에게 화가로서 운명을 시험받는 중요한 해였다.
피사로가 인상주의 화가들을 고갱에게 소개하면서 1879년 4월에 열릴 제4회 인상주의 전시회에 참여하라고 권했다.
고갱은 흥분했다.
프랑스 화단에 입지를 이미 마련한 화가들이 대거 참여하는 전시회에 자신이 포함되는 건 영예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전업화가들이고 자신은 아마추어 화가이기 때문에 그들의 작품과 자신의 것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벽에 걸리는 건 전업화가와 동등한 대우를 받는 걸 의미한다.
고갱은 작품을 출품하면서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피사로의 작품 세 점을 피사로의 요청으로 함께 출품했다.
전시회에 세잔, 르누아르, 시슬레는 불참했다.
전시회는 성공적이었으며 고갱은 매우 고무되었다.

그해 여름 고갱은 퐁투아즈에서 피사로와 함께 작업하면서 사과나무를 여러 점 그렸다.
<사과나무 Apple Trees>를 4년 전에 그린 어머니가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가는 그림과 비교하면 양식에 변화가 생긴 걸 볼 수 있는데 피사로의 영향이다.
피사로가 1877년에 그린 <퐁투아즈 근처 에르미타주의 황소언덕 The Cote des Boeufs at L'Hermotage, near Pontoise>은 고갱의 주제와는 전혀 다르지만 붓질을 비교하면 고갱이 피사로의 영향을 받았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붓질이 짧아지고 순색이 사용되었다. 피사로의 붓질이 더 정교하며, 주제의 선택에 있어서도 복잡하고 공간에 대한 깊이감이 있으며 명암이 현저하다.
나이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스승의 작품이 우수한 건 당연하다.
주제로 말하면 고갱의 작품은 진부하기 짝이 없다.
사과나무 세 그루로 화면에 가득 채웠는데 특별한 형태를 지닌 나무도 아니고 원근이 제대로 묘사되지 못했으며 실루엣의 효과는 충분히 나타나지 못했다.
피사로의 작품에서는 곧게 뻗은 여러 그루 나무가 자연에 커튼을 친 듯한 가운데 뒤로 붉은색 지붕을 한 가옥들이 안정감 있게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보여 삶과 자연의 조화가 적절하게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원근은 물론 명암이 미세한 곳에까지 두드러지게 묘사되었다.
과연 풍경화의 대가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고갱은 피사로와 함께 야외로 나가 풍경을 그리면서 그의 영향 하에 사물을 오랜 시간을 두고 치밀하게 관찰하며 빛의 반사에 의해 대상이 다양한 색으로 발하는 걸 보고 색을 섞어 사용하는 색채분할법을 익혔다.
피사로의 둘째 아들 조르주 만자나 피사로가 1881년경에 <인상주의 화가들의 피크닉 Impressionists' Picnic>이란 제목으로 그린 드로잉을 보면 앉아 있는 피사로 왼편에 아르망 기요맹Armand Guillaumin(1841~1927)이 있고, 그 옆에 고갱이 서있으며, 오른편에는 세잔이 이젤 앞에서 풍경을 그리고 있고, 세잔의 아내가 어린 만자나를 보살피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만자나가 여러 해 전에 있었던 일을 회상해서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데, 고갱이 피사로 외에 인상주의 화가들과 함께 야외에서 작업했음을 알게 해준다.
기요맹은 상업에 종사하다가 아카데미 쉬스에서 회화를 배웠고, 피사로, 세잔 등과 함께 회화에 전념했다.
1863년 낙선전이 처음 개최될 때 출품했으며, 1874년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에 출품한 뒤 인상주의 화가로 활약했다.
그는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전원과 바다 풍경을 주로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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