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의 <절망>과 <불안>

<뭉크, 쉴레, 클림트의 표현주의>(미술문화) 중에서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는 1920년 오스카르 코코슈카에 관한 글을 써달라는 아르파드 바인가트너의 청탁을 거절하는 편지에서 뭉크의 작품, 특히 <절규>가 머리에 떠오른다면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뭉크의 선이 이미 테러의 구성적 힘을 내포하고 있으며, 거기에는 코코슈카의 것보다 자연에 관한 무한한 힘이 있으므로 뭉크는 순수 공간적 의미, 즉 이미지나 그림에서 선의 끝을 무디게 하는 데서 보존과 파괴의 상대적인 것들을 화해시킬 수 있었습니다.
<절규>를 그리기 한 해 전 뭉크는 <절규>에서의 다리를 배경으로 <절망>을 그리고, 2년 후에는 <불안>을 그렸으며, 1896년에는 <불안>을 구성만 약간 달리 하여 목판화와 석판화로 제작했다.
모두의 배경은 <절규>와 같다. 같은 배경으로 다리 위에 그는 자기 자신 외에도 남자와 여자들을 세웠다.
붉은색 저녁노을이 여기에서도 강렬한 느낌을 주는데 곧 어둠을 예고하는 노을은 절망을 상징한다.
뭉크가 정면을 바라보는 검은 의상의 군상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이런 정면성에 대해 더러 사람들은 말하기를 분열병 심리에서의 표현성과 친화성이라고 하는데, 그는 자신을 괴롭히는 불안이 모든 사람들에게 있다는 즉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실존적 불안임을 관람자에게 인지시키기 위해서였다.
어느 누구도 떨쳐버릴 수 없는 숙명으로서의 불안을 표현하고자 한 것으로 뭉크에게는 이런 염세주의 사상이 있었다.
<불안>은 <칼 요한 거리의 봄날 저녁>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절규>의 다리 뒤로 보이는 풍경을 합성한 것이다.
캔버스의 구성과 새빨간 노을이 <절규>와 같다.
관람자의 시야를 엄습하고 경악하게 하는 것은 저녁으로 상징되는 죽음의 그림자이다.
항구를 배경으로 한 무리의 사람들은 지금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일까?
뭉크가 실존적 불안을 표현한 것이므로 이렇게 물어야 할 것이다.
인간은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일까?
이런 근원적인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는 불안이 <절망>과 <불안>에 내재한 내용이다.
뭉크는 1892년에 <절망>과 <칼 요한 거리의 봄날 저녁>을 그리고 다음해에 <절규>를 그렸다.
<절망>과 <칼 요한 거리의 봄날 저녁>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한 그는 불안에 치를 떠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로 결심한 것이다.
두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삼인칭이지만 자화상은 일인칭으로서 이인칭의 관람자와 직접 소통하는 관계이다.
다른 사람에 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관해서 말하는 것이다.
<절규>에 나타난 다리는 실재하는 다리이지만 회화의 세계로 통하는 관문으로서의 다리이다.
우리에게 소개하기 위해 그가 다리에 세운 그의 회화의 세계에 속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외로운 모습이다.
공포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환영의 세계 사람들이다.
다리 반대편의 세계에는 <다리 위의 여인들>과 <다리 위의 소녀들>이 있다.
<다리 위의 소녀들>의 의상이 흰색, 붉은색, 푸른색으로 밝고 배경이 탁 트여 상쾌한 느낌을 준다. 그의 작품 가운데 드물게 선명한 색을 사용한 작품이다.
원근법을 강조하여 다리를 비스듬히 한 것은 역동성을 위해서이다.
다리를 똑바로 구성한다면 배경이 양분되고 산만해질 것이다.
다리 한편의 배경만을 보여주는 단순한 구성이 작품을 명쾌하게 하다.
그는 이 작품을 약간만 변형하여 1900년에 다시 그렸는데, 거기에서는 붉은색과 푸른색 의상의 소녀들은 관람자에 들을 돌리고 난간에 팔을 얹고 강물을 바라보고 있지만 흰색 의상의 소녀는 그들과 반대로 서서 오른손에 모자를 길게 늘어뜨리고 쥔 채 몸을 관람자로 향하게 했다.
소녀의 얼굴은 그의 회화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무뚝뚝하고 차가우며 유령 같은 표정이다.
그는 구성을 조금만 달리 하여 1901년에도 그렸다.
1899년에 캔버스에 유채로 그린 <다리 위의 소녀들>을 21년이 지난 뒤인 1920년에 목판화와 석판화로 다시 제작한 것을 보면 이 작품에 대한 애착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판화에서는 반대로 구성되었는데, 목판과 석판에 제작할 때 그대로 그리더라도 인쇄를 하게 되면 반대로 나타나게 된다.
당시 판화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특히 독일 화가들이 잊혀가는 전통 판화기법을 되살렸는데, 뭉크의 판화기법은 혁신적이었다.
판화는 그의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매체였으며 그는 과감한 실험을 통해 단순한 복제로 생명력을 상실한 판화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동일한 작품을 전혀 다른 느낌이 나도록 할 수 있었던 것은 기법 때문이며 칼 같은 예리한 선의 효과가 더욱 더 강렬한 느낌을 준다.
판화가 그에게 얼마나 중요했었는지는 크리스티아니아 시에 기증된 유작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데, 회화가 1,008점, 드로잉과 수채화가 4,443점, 조각 6점인데 비해 판화는 무려 15,391점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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