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에 있어 질서와 혼돈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아동 미술치료 Child Art Therapy』, 주디스 아론 루빈(2010, 출판사 知와 사랑) 중에서
『아동 미술치료』의 저자 주디스 아론 루빈은 창의성에 있어 질서와 혼돈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말한다.
둘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아직은 없는 실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역설적이거나 모순되는 표현을 종종 사용한다.
예를 들면 ‘관조적 활동contemplative action’이란 표현에서는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하거나 비추어 봄을 뜻하는 ‘관조’라는 단어와 몸을 움직여 행동함을 뜻하는 ‘활동’이 더해졌다.
또 ‘무의식적 탐색unconscious scanning’이란 표현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생각을 검열하고, 경계하면서 동시에 상상력과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하기란 불가능하다.
앤턴 에렌츠바이크Anton Ehrenzweig(1908-66)는 「창조적 포기 Creative Surrender」라는 비평문에서 자발성과 자유 뒤에는 질서정연함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자발적인 행동 뒤에는 심사숙고하는 태도가 등장한다. 완전한 수용 뒤에는 비판이 나온다. 직관 뒤에는 엄격한 사고가 등장한다. 대담성의 뒤에는 신중성이 나온다. 환상과 공상 뒤에는 현실의 검증이 이어진다. ... 깊이를 향한 자발적 회귀는 이제 끝났다. 영감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했던 태도는 이제 활발한 움직임, 통제, 각고의 노력에 길을 내주어야 한다.”
주디스 아론 루빈은 질서와 혼돈이 때도 동시에 존재하고, 또 어떤 때는 번갈아 나타나며, 또 다른 때는 연속적으로 잇따라 발생한다고 말한다.
이는 성인에게든 아동에게든 마찬가지이다.
창의적인 표현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진정한 자유를 맛본 경험이 없다면 진정한 질서 또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아동 미술치료를 시행하는 사람은 이 두 가지 면 사이의 생산적이고 통합적인 관계를 꼭 기억해야 한다.
통제, 질서, 규제가 어떤 창조자의 내면에서 나왔다면, 그 창조자가 어른이든 아동이든 상관없이 혼란, 막연함, 내면의 현실과 직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창조물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구성할 수 있다.
열정과 에너지가 없다면 어떤 재료를 가지고 작업하든 그것을 예술이라 부를 수 없다.
즐거움을 느끼며 자발적으로 작업하는 자유가 없다면 그 누구도 열정에 사로잡히거나, 자신을 잃어버릴 정도로 작업에 몰입하는 경험을 할 수 없다.
예술과 비예술을 가르는 차이는 단순히 어떤 것을 목격하거나 수행하는 데서 벗어나 우리가 주고받는 모든 것에 내재한 에너지를 느끼고, 그것에 동요되고, 그로 인해 변화되는 것에 있다.
그렇다면 미술교육 그리고 더 나아가 미술치료란 그림 그리는 사람에게 그런 살아있는 각성을 일깨워주는 걸 의미한다.
주디스 아론 루빈은 스스로의 창의성에 대한 자신감을 잃은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그들의 창의성이 파괴된 것이 아니라 단지 내면에서 잠자고 있었던 것뿐이라는 사실을 배웠다고 말한다.
그들의 창의성은 언제든 다시 깨워주기만을 기다리면서 내면에 웅크리고 있었다고 말한다.
창의성의 표현은 잠시 약화될 수 있으며, 잠시 침묵할 수 있지만 그 능력은 없어지지 않고 남아있는 것이다.
게슈탈트 심리학자 루돌프 아른하임Rudolf Arnheim(1904-2007)은 아동이 그림을 그리면서 혼란스러워하는 과정을 수차례 겪고 나서야 비로소 3차원 투시법을 이해하게 된다고 밝혔다.
그는 모험과 성장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보기 흉한ugliness’ 단계를 거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아동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어린이들이 성장하기 위해 일시적이든 장기적이든 퇴행의 시기를 겪는 상황을 많이 목격했을 것이다.
대개 퇴행은 신중하다 못해 강박적이기까지 한 행동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난다.
그런 아이들은 재료를 가지고 장난치며 노는 시기를 거쳐야 한다.
너무 어린 나이부터 깨끗하게 정리 정돈하도록 강요받은 아이들은 물감이나 찰흙을 가지고 정돈된 그림을 그리거나 모양을 만들면서 즐겁게 노는 법을 알지 못한다.
그런 아이들은 우선 미술 재료를 가지고 잔뜩 어지럽히면서 아수라장을 만드는 경험을 한 뒤에야 비로소 제대로 된 미술 활동을 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하게 내면에 분노가 쌓인 아이는 그 분노를 직접 토해내고 난 후에야 마음을 잡고 미술 활동에 전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