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생에게
우선 <예술의 종말 이후>를 열심히 읽는다니 반가워요.
몇 사람에게서 듣는 이야기지만 책이 어렵다고 합니다.
인터넷으로 교보문고에 들어가니 그래도 이 책이 미술 이론서 중에는 최고 베스트셀러이더군요.
늦은 감이 있지만 예술의 종말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데 고무됩니다.
번역자로서 궁금한 것이 있으면 after service 차원에서 설명해야겠지요.
지난 번 뉴욕에 가서 단토를 직접 만나는 기회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분 에이전트로부터 e-mai 주소를 받았지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어 연락을 못하고 서울에 돌아와 연락했습니다.
그분의 답글은 매우 따뜻하며 맘씨좋은 이웃 아저씨의 다정한 글이었습니다.
그나마 e-mail로 연락이 가능하여 다행하게 여깁니다.
난 그분의 이론을 우리나라 독자에게 전달하는 데 앞장서야 할 처지에 있습니다.
그만 각설하고 ...
<예술의 종말 이후>에서 내러티브란 말이 지속적으로 사용되는데 특별한 말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글자 그대로 이야기란 뜻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객관적인 역사관을 피력하려는 많은 사람들의 시도가 있어 왔지만 결국은 각각 개인의 견해를 밝힌 것에 불과하고 그래서 그 사람의 이야기 혹은 내러티브이다라고 이해하면 되는 것입니다.
'바자리의 내러티브', '그린버그의 내러티브' 등의 말은 그 사람들의 주장이 과거에 매우 영향력이 있었기 때문이며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는 개인적인 견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단토가 내러티브란 말을 사용하는 것인데 이 말은 또한 예술의 종말을 주장하는 아더 단토 자신에게도 적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역사는 끊임없는 내러티브의 연속이라 하겠지요.
본론으로 들어가서
제6장에서 '역사의 경계' 혹은 '역사의 울타리'란 말이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동일한 뜻으로 누군가가 역사를 주류와 비주류로 구분했음을 지적하는 것이며,
오늘날 다원주의에서 경계 혹은 울타리가 모두 무너졌음을 볼 때 과거 경계와 울타리를 운운하며 비주류를 배척한 오류를 단토는 지적하여 바로 잡으려고 합니다.
얼마 전 석방된 송두율 교수가 스스로를 경계인이라고 정체성을 밝혔듯이 역사의 울타리 속에 스스로를 갇히게 하지 않고 울타리를 넘나들며 울타리 안과 밖을 공평하게 바라보겠다는 태도입니다.
매우 진전된 태도로 진보적인 생각이지요.
단토는 '모더니즘의 이론'을 확립한 클레멘트 그린버그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단토는 그린버그가 울타리를 만들고 미술을 주류와 비주류로 제맘대로 분류했음을 비평합니다.
그린버그는 모더니즘의 특징으로 회화의 본질인 2차원의 세계를 인정하고 2차원적으로 행위해야 한다는 점을 주장합니다.
예를 들면 3차원의 사물 나무를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입체감을 느끼게 그린 후 명암으로
'환영'을 창조하여 실재하는 나무처럼 보이게
그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르네상스 화가들의 특징으로 모더니즘의 시기에는 용인할 수 없는 점으로 꼽았습니다.
그가 잭슨 폴록을 미국 최고의 화가로서 유럽 화가들의 대명사 피카소와 겨룰 만한 예술가로 꼽은 이유는 폴록이 3차원으로 보이는 그림을 그리지 않고 2차원의 예술인 회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물감을 뿌리거나 칠해 회화가 "물감으로 구성된 물리적 사물의 창조"임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린버그의 많은 평론을 통하여 자신들의 행위의 정당성을 찾은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은 모더니즘의 물질주의적 명령을 너무 열렬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추상표현주의는 다른 예술이나 매체의 권한까지도 행사했는데, 예를 들면 물감을 두텁게 칠하여 조각적인 효과를 냄으로써 조각의 영역 속으로 넘쳐흘렀습니다.
그린버그는 이를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각각의 예술과 매체는 다른 예술과 매체의 영역을 넘보지 않는 것을 그린버그는 모더니즘 미술사의 추동원리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린버그는 추상표현주의를 비판하게 되었고 폴록과 같은 추상표현주의 화가는 그린버그에게 반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린버그는 추상표현주의 회화를 '회화적임 painterliness'으로 보고 찬양했는데 지나친 물감의 남용이 3차원적으로 보여지게 되었다고 비판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린버그는 추상표현주의 회화에서의 공간은 "또 다시 눈속임 그림의 환영의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 그것은 '읽히는 것'이라기보다는 더 촉각적인 것, 즉각적인 지각의 대상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단토는 그린버그의 오류를 지적했습니다.
단토는 "물감이 3차원적으로 됨에 따라 조각의 정체성을 띠게 되었으며, 공간이 또 다시 환영적으로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물감이 실재real가 된 것은 아님을 지적했습니다.
한편 그린버그는 추상표현주의를 버리고 '탈회화적 추상 post-painterly abstraction'을 주장했는데 이런 그의 주장에 일치한 회화가 바로 '컬러필드 color-field'로서 물감을 뿌리거나 덧찰하여 두텁게 하는 것이 아니라 물감을 수채처럼 연하게 그리고 평면을 넓게 칠하는 그림을 말합니다.
물감이 캔버스에 은은하게 적셔지고 퍼지는 추상 그림을 그린버그는 컬러필드라고 부르고 이를 찬양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런 류의 회화를 추구한 화가들이 바로 헬렌 프랭켄탈러, 모리스 루이스, 케네스 놀랜드 등으로 그린버그는 이들을 미술 발전의 투사들로 보고 전시회를 열어주는 등 적극적으로 후원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단토는 그린버그가 찬양했던 추상표현주의와 이제 태도를 바꿔 찬양하기 시작한 컬러필드 모두를 "바자리적 회화와는 대조적으로 삶으로부터 더욱 더 단절되었고, 미술계 안에 더욱 더 격리된 상태로 존재"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한편 추상표현주의 이후의 세대 화가들은 현실 및 삶과의 접촉 속으로 미술을 되돌려놓고자 했습니다.
이들이 바로 1960대를 풍미한 팝아트 화가들입니다.
이들의 대표적 인물이 바로 앤디 워홀이지요.
팝아트는 과연 시각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그린버그는 여태까지 자신이 주장한 이론에 근거해서 팝아트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팝아트를 일시적인 일탈 현상으로 보았습니다.
그린버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팝아트를 격하시켰습니다.
"지금까지 팝아트는 취미의 역사에서 하나의 새로운 에피소드에 해당하긴 하나 현대 미술의 진화과정에 나타난 진정으로 새로운 에피소드에 이르지는 않았다."
단토는 그린버그가 팝아트를 옵아트와 미니멀리즘과 더불어서 '진기한 미술 novelty art'의 범주 속으로 좌천시켰다면서, 그린버그가 진기한 미술을 비열하게도 골동품 가게에서 팔리는 진기한 물건이라고 하는 케케묵은 의미로 사용했음을 지적했습니다.
그린버그는 자신의 이론에 근거해서 탈회화적 추상 이후의 모든 미술을 진지하게 다룰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의 비평적 산출이 거의 멈춰버린 것은 당연했지요.
그린버그의 내러티브의 한계가 드러났음을 의미합니다.
1992년 여름 그린버그는 한 소집단에서의 강연을 통해 지난 30년의 미술을 회고하면서 미술이 "이렇게 천천히 움직였던" 적은 없었다는 말로 지난 30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인양 말했습니다.
청중 중에 어떤 사람이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느냐고 묻자 그린버그는 "데카당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린버그는 미술의 역사가 회화에서의 발명을 통해서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단토는 이런 그의 생각이 터무니 없음을 지적합니다.
단토는 그린버그의 오류를 지적합니다.
그린버그는 미술을 바자리 시대에는 모종의 재현주의와 동일시되었다가 19세기 후반의 어떤 시점에 와서 이런 잘못된 동일시로부터 벗어나 적어도 회화의 경우 자신의 물질적 매개체인 물감과 캔버스와 표면과 형상과 동일시되게 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도식에 맞지 않은 많은 미술이 역사의 경계 밖에 놓여졌음을 지적합니다.
그린버그식의 견해는 미술사를 진보의 과정으로 보는 것으로 단토는 이를 부정합니다.
진보의 개념이 그린버그에게는 중요했으므로 그는 초현실주의를 역사적 퇴행으로 간주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던 것입니다.
"초현실주의자들의 반형식적이고 반미학적인 니힐리즘은 - 온갖 억지스러운 넌센스를 초래한 다다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 결국, 현대 미술의 금욕주의에 의해 쫒겨난 들뜬 부자들과 국외추방자들과 미적 게으름뱅이에게 주어진 축복임이 입증되었다."
초현실주의 화가들 특히 살바도르 달리의 경우 자연주의적 재현의 그림을 그린 것을 그린버그는 용서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린버그는 초현실주의를 역사의 경계 밖에 놓았습니다.
단토의 크게는 예술의 종말 작게는 미술사의 종말은 이러한 그린버그식의 울타리 만들기가 무용함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역사를 진보로 보고 진보에 일익을 담당하지 않으면 역사적으로 무가치하게 처리하는 오류를 지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단토는 그린버그의 모더니즘 미술론은 취미에 의해 규정된 미술이며, 본질적으로 취미를 가진 사람들, 특히 비평가들을 위해 만들어진 미술임을 지적합니다.
그린버그는 한 논문에서 "예술이 되고자 하는 것들은 취미를 통해 경험되기까지는 예술로 가능한지도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했는데, 이 말은 공감됩니다.
그러나 그는 취미의 권역을 벗어나기는 하지만 미술의 맥락 안에 그대로 남아 있는 작품을 간과했습니다.
예를 들어 마르셀 뒤샹의 변기는 취미와는 어울리지 않지만 성공을 거둔 작품입니다.
단토는 뒤샹을 포함하여 팝아트 예술가들이 미술의 본질적 특질들을 우연한 특질로부터 구별하고, 미술을 재현이나 환영 따위의 오염물질로부터 정화한 사건을 꼽아 과거 내러티브들 바자리와 그린버그를 포함한 영향력 있는 미술사학자와 비평가들의 오류를 지적합니다.
이를 그는 역사의 울타리 혹은 경계가 무너지는 새로운 국면으로 이해합니다.
뒤샹의 변기는 상점의 변기와 똑같습니다.
워홀의 브릴로상자는 슈퍼마켓의 브릴로상자와 겉으로는 똑같습니다.
"예술과 실재의 관계라고 하는 철학적 문제를 풀기 위해 비평가들은 지각적 식별불가능성의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는 차이점들이 전혀 없을 정도로 실재와 너무 닮은 유형의 미술을 분석하는 일에 착수해야" 했습니다.
워홀의 브릴로상자와 슈퍼마켓의 브릴로상자를 무엇이 구별해주는지 비평가들은 답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상이 6장의 요지입니다.
다음 기회에 7장 8장 등 순서적으로 요약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