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를 즐긴 레오나르도
김광우 님 글, 2004/11/25, 145 회 조회.

  유머를 즐긴 레오나르도


당시 피렌체 젊은이들은 오늘 날의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파티를 좋아했고 많은 시간을 어떻게 즐길 것인가에 관해 생각했다.
그들은 평범한 생활을 싫어했다.
레오나르도에게는 유머가 있었고 그 역시 즐거운 시간을 가지려고 했고 남에게 웃음을 선사할 수 있는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어 퍼뜨리기도 했다.
그가 만든 재담 중에 이런 것도 있다.

"페트라르카가 월계수잎을 좋아했다면 그 이유는 소세지와 개똥지빠귀 요리를 만드는 데 적당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왜 아이들이 못생겼지만 네 그림에서는 아름답게 묘사되었느냐고 물으면 그는 "그림은 낮에 그렸지만 아이들은 밤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했다.
과학을 좋아한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속임수를 보여주기도 했다.
유리컵 사이에 나무막대기를 올려놓고 유리컵을 손상시키지 않는 가운데 나무막대기를 자른다든가 끓는 오일에 붉은색 포도주를 부어 다양한 색의 화염을 만든다든가 했다.

세르 피에로의 두 번째 부인이며 레오나르도의 두 번째 의붓어머니 프란체스카 란프레디니가 1473년에 죽었다.
그녀는 아이를 낳지 못했다.
그해 여름 레오나르도가 그린 풍경화 뒤에 "나는 행복하다"라고 적혀 있다.
피에로는 2년 후 젊은 여인 마르게리타 디 프란체스코 디 야코포 디 구글리엘모와 결혼했으며 그녀는 혼인지참금으로 365플로린을 갖고 시집왔다.
피에로는 공증인으로의 직업을 완전히 굳혀 사업이 성공적이었다.
시인 베르나르도 캄비니Bernardo Cambini는 "법에 정통한 사람이 필요할 경우 다 빈치 피에로보다 나은 사람은 없다"고 했다.
세 번째 부인은 1476년에 사내를 낳았고 피에로는 세례식을 거대하게 행하면서 아이의 할아버지 안토니오의 이름을 그에게 주었다.
그녀는 그뒤 다섯 아이를 더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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