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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의 손과 모네의 눈 ㅣ The Great Couples 1
김광우 지음 / 미술문화 / 2002년 12월
평점 :
품절
<마네의 손과 모네의 눈> 중에서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에서의 점심식사>
에두아르 마네(1832~83)는 삶의 경험 자체가 변화하므로 예술이 변화해야 하며 화가는 현대생활을 그려야 한다고 주장한 시인 샤를 보들레르의 충고를 받아들였고 이런 점에서 모더니즘 회화의 선구자이다.
클레먼트 그린버그는 평편한 표면이라는 회화의 물리적인 성질을 인식하기 시작한 마네의 회화 경향을 기술하기 위해 <모더니스트 회화>(1960)에서 모더니스트 회화란 말을 사용했다.
1863년 <풀밭에서의 점심식사>를 그리기 얼마 전 마네는 친구이며 훗날 프랑스 문교부장관이 된 프루스트와 함께 센 강가에서 일광욕하는 여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나도 누드를 그려야 할 것 같아. 음, 내가 저들에게 누드를 보여주겠어!”라고 했다.
<풀밭에서의 점심식사>는 스페인 의상을 한 두 중년 신사와 누드의 여인이 준비해온 점심식사를 풀밭 위에 펄쳐놓고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장면을 그린 작품이다.
주말이면 중산층이 센 강가로 피크닉 가서 오찬을 즐기는 건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작품처럼 여인이 누드로 남자들 사이에 앉아 있는 경우는 없었다.
피크닉 장소에 여인이 누드로 앉아 있다는 것은 아주 과격한 회화적 시도였으며 그런 모습을 본 관람자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여인은 고전적인 누드가 아니라 벌거벗은 모습으로 평론가들은 고전적인 주제의 누드를 평범한 여인에게 적용한 데 놀랐다.
누드 여인은 마네가 아까던 모델 빅토린 뫼랑이다.
마네는 화실에서 누드를 그린 후 피크닉 장소에 있는 것처럼 삽입했다.
두 남자는 마네의 동생과 여동생의 미래의 남편이었다.
황제가 이 작품을 “뻔뻔스러운 그림”이라고 비난했으므로 사람들은 더욱 문제의 작품을 보려고 주말이면 전시장 밖에 줄을 섰다.
평론가 아메르통은 황제의 말에 동조하면서 적었다.
“철면피 같은 프랑스 작가 마네의 그림은 조르조네의 <샴페르트 컨서트>를 프랑스의 사실주의로 해석한 것이다.
비록 여인들이 벌거벗었지만 조르조네의 작품은 아름다운 색상으로 용서받을 만했다.
그러나 마네의 작품에는 사내들의 복장이 아주 해괴망칙하고, 다른 여인은 스미즈차림으로 냇가에서 나오고 있으며, 두 사내는 바보같은 눈짓을 한다.”
마네는 이 작품의 제목을 <일광욕>이라고 하려 했는데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꾀했다.
르네상스의 조르조네에서 시작되어 프랑스에서도 바토, 부세, 코로 등에게 친근해진 고전적 주제를 마네는 현대화하여 나타내려고 했다.
이 작품에 쏟아질 비난을 마네는 상상조차 못했다.
이 작품에서 누드뿐 아니라 앞의 세 사람의 구성, 옆으로 쓰러진 바구니, 정물 등 부분들의 묘사가 뛰어나다.
마네는 이 작품을 88-116cm의 크기로 그렸다가 그로서는 처음으로 커다란 캔버스에 다시 그렸다. 야심을 갖고 그렸음을 알게 한다.
이 작품은 에밀 졸라가 호평한 후부터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이런, 이 무슨 외설이란 말인가! 장성한 두 남자 사이에 옷을 벗은 채 앉아 있는 여인이라니! ...
사람들은 화가가 뚜렷한 화면공간의 배분과 가파른 대비의 효과를 위해 인물의 구성에서 외설적이고 음란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말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풀밭에서의 오찬이 아니라, 강렬하고도 세련되게 표현한 전반적인 풍경이다.
전경은 대담하면서도 견고하며 배경은 부드럽고 경쾌하다.
커다란 빛을 듬뿍 받고 있는 것 같은 살색의 이미지, 여기에 표현된 모든 것은 단순하면서도 정확하다.”
<풀밭에서의 점심식사>는 마르크 앙투안느의 <파리스의 심판>을 현대적 감각으로 해석한 것이다.
마네는 누드 여인으로 하여금 관람자를 빤히 쳐다보게 했다.
과거에 누드를 그린 화가들은 모델이 다른 곳을 응시하게 하여 관람자가 누드를 제삼자를 바라보듯 거리낌없이 바라볼 수 있도록 했지만, 마네는 모델을 이인칭으로 그려서 관람자를 직접 바라보게 했다.
이는 그림과 관람자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설정한 것으로 관람자와 그림이 더욱 친숙하게 되었으며, 또한 관람자가 주제를 자신들의 시대적 감각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는 것으로 작품감상의 자유로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풀밭에서의 점심식사>는 1863년 살롱전에 출품하여 낙선하자 낙선전을 통해 파리 시민에게 소개되었다.
낙선전은 살롱전 개막 2주 후 5월 15일에 개최되었고 입장료는 1프랑이었는데 무려 7천 명이 관람했다.
낙선전은 큰 규모로 개최되었는데 12개의 화랑에 무려 1천 2백 점이 소개되었다.
마네는 낙선전의 스타로 부상했다.
<풀밭에서의 점심식사>는 젊은 세잔의 마음을 뒤흔들었는데 그는 1870~71년에 동일한 제목으로 두 점을 그렸다.
세잔은 이 시기에 과격한 그림을 그렸으며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느낌을 강렬하게 표현했다.
그의 작품에서 나무 위로 곧게 솟은 것과 그 아래 세로로 같은 선상에 있는 세워진 포도주병은 남자의 성기를 상징한다.
마네와 달리 그는 환상의 누드 속에서 성적 욕구를 느끼는 남자의 모습을 묘사했다.
1863년 낙선전에서 마네의 <풀밭에서의 점심식사>를 본 모네는 마네의 작품에 버금가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습작을 거듭한 끝에 1866년에 418-367cm의 크기로 완성했다.
25살의 모네의 야심이 담긴 작품이다.
그의 의도는 마네의 작품보다 자연스러운 장면을 그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네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모네의 작품도 화실에서 그린 모델을 풍경 속에 배치한 것이다.
그는 사진을 참조하여 그린 것 같은데 12명이 등장하는 피크닉 장면이다.
모네는 사람 하나하나를 습작으로 연구하면서 그림 전체에 대한 구성을 시도했는데 중앙에 왼팔을 내밀어 접시를 권하는 여인의 모습만이 예외로 그녀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행위를 하는 게 아니라 그저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사람들이 대화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포즈를 취하는 것도 아니며 서로 시선을 주고받는 것도 아니다.
피크닉을 위해 마련한 음식이 화면 중앙에 펼쳐진 것이 전부이다.
그림에는 빛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빛이 그림을 과격하게 보이도록 한다.
빛이 나무 아래로 쏟아졌고, 따라서 명암이 분명하게 그림 전체에 나타났다.
모네의 관심은 모델들이 아니라 빛이 사람과 자연에 작용하는 데 있었다.
빛은 나뭇잎에 닿아 푸른색과 금빛으로 아롱진다.
그는 빛이 사람들의 머리와 어깨에 닿아 눈부시게 나타나는 것을 강조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 작업은 미완성으로 그쳤다.
쿠르베가 그림을 비평하고 돌아간 뒤 모네는 1866년 살롱전 출품을 포기한 것 같다.
쿠르베는 너무 크게 구도를 잡은 그림이라서 야외풍경화라고 하기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림의 남자들 대부분은 바지유를 모델로 한 것이며 중앙에 앉아 있는 수염난 남자는 쿠르베로 보인다.
<풀밭에서의 점심식사>에 여인이 여러 명 등장하지만 모두 카미유 한 사람을 모델로 한 것이다.
열여덟 살의 카미유는 모네의 애인으로 나중에 그의 첫 부인이 된다.
훗날 왜 단 두 명의 모델로 여러 사람을 묘사했느냐는 질문에 모네는 두 사람밖에 모델을 구할 수 없었고 돈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개개인의 인물에 대한 성격을 나타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두 사람으로 족했던 것 같았다.
1920년 모네의 화실을 찍은 사진을 보면 <풀밭에서의 점심식사>가 벽에 걸려 있다.
이 작품은 오랫동안 방치했으므로 왼쪽과 오른쪽 부분이 손상되어 그 부분들을 잘라냈다고 한다.
이 작품은 모네가 1926년 타계할 때 지베르니의 화실에 있었으며 크기가 248-244cm였다.
그는 이것을 1920년 80회 생일을 맞아 자신을 방문한 사람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마네의 그림을 따라서 그렸네. 대부분의 작가들이 그러했듯이 난 야외에서 그림을 구성한 후 화실에서 완성했지.
난 이 작품을 좋아하는데 미완성이며 많이 상해 있네.
세 얻은 방의 보증금 대신 이 작품을 집주인에게 준 적이 있었는데 집주인은 캔버스를 둘둘 말아 지하실에 쳐박아 두었네.
돈이 생겼을 때 이 작품을 도로 찾아왔지만 작품이 조금 상한 상태였어.”
1866년 모네가 동일한 주제로 다시 그린 그림을 보면 원래 그림 중앙 부분을 그대로 보존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