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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텔로로부터 수학한 후에도 베로키오는 그의 작업에 협력했으며 도나텔로가 늙어서 작업을 할 수 없을 때는 구매자들을 젊은 베로키오에게 소개해주었다.
베로키오는 1464년에 '국부 father of the state; 코시모 데 메디치의 묘비를 의뢰받아 제작했다.
이 중요한 작업이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묘비를 제작한 후 그에게는 일감이 쏟아져들어왔다.
그는 자신이 조각가와 금 세공가일 뿐 아니라 화가이며 장식가임을 널리 광고했다.
비아 데 아그놀로에 있는 그의 작업장에서는 온갖 작품들을 제작해냈다.
그의 작업장은 오늘 날 상점과도 같았는데, 아래층이 거리에 있어 상품을 진열하듯 작품을 행인들이 볼 수 있도록 전시했고 사람들이 아이와 함께 안으로 들어왔고 개, 닭, 돼지들도 쉽게 들어올 수 있었다.
바사리의 말로는 베로키오가 싼 것과 비싼 것을 가리지 않고 모든 주문을 받았다고 한다.
문하생과 조수들은 같은 지붕 아래서 스승과 함께 기숙하면서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했다.
그들은 스승의 말에 복종해야 했다.
스승은 어버이와도 같았으므로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을 때는 제자들에게 매질을 하기도 한다.
레오나르도가 베로키오의 작업장에서 배우고 조수로 활동한 기간은 12, 13년이나 되었다.
화가이면서 작가 첸니노 첸니니Cennino Cennini(1370년경~1440)는 13년의 기간이면 도제discepolo의 단계에서 수습기간을 마치고 제구실을 하는 장색garzone의 단계를 거쳐 숙련공maestro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도제기간에 견습생은 첫 6년 동안 그림 그리는 데 사용하는 붓 만들기, 겉칠하기, 참피나무나 버드나무 페널에 캔버스를 잡아당겨 붙이기, 알료를 알아보고 준비하기 등을 배우게 되며 매일 알료를 섞어서 원하는 색을 내는 일을 배우게 된다.
이후 6년 동안은 색을 사용하는 방법, '착색료로 장식하기 decorate with mordants', 금실로 천에 수놓기, 벽에 직접 그리기 이 모든 일을 주말에도 휴일에도 쉬지 않고 하게 된다.
첸니니는 1430년대에 쓴 무려 189장에 이르는 『회화에 관한 논문』이란 제목의 책에서 이런 내용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예술이 기술적인 사업임을 지적하려고 했다.
그는 기교에 관해서도 상세하게 기술했는데, 고급 피지 패널에 어둡게 착색하는 방법, 늙은 남자의 얼굴 묘사, 동정녀 마리아의 파란색 겉옷 그리기, 물고기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강물 그리기 등에 관해 언급했다.
그는 남자의 몸을 사용해서 인체의 비례에 관해 기술했는데 매우 정확했다.
베로키오는 1467년에 코시모 데 메디치의 묘비를 완성하여 상 로렌초 교회에 장식했다.
이 시기에 그는 거대한 크기의 구체를 청동으로 제작하여 피렌체 대성당 두오모Duomo 제등 위에 놓았다.
레오나르도는 이 작업을 처음부터 마칠 때까지 보았다.
대성당은 수세기에 걸쳐 건립되었다.
아르놀포 디 캄비오Arnolfo di Cambio(1302년 이전에 태어났을 것으로 추정)가 1300년 이전에 산타 마리아 교회 부지에 건립하기 시작했다가 중단한 후 오랫동안 방치되었고 조토가 종탑을 디자인했으며, 그후 안드레아 피사노, 프란체스코 탈렌티, 기베르티, 브루넬레스키가 작업해 완성했다.
브루넬레스키는 고대 이래 가장 큰 둥근 지붕을 올려놓아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는데 이런 무거운 지붕을 올려놓으려면 부축벽이나 이에 상응하는 힘을 지탱하게 하는 구조물이 필요한 데도 그런 것 없이 기하적으로 디자인했다. 브루넬레스키가 1446년에 타계했을 때 둥근 지붕은 올려졌지만 그 위에 장식물이 없었다.
대리석으로 제등을 막 만들 때였으므로 그것을 완성시켜 지붕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이로서 브루넬레스키가 고안했던 디자인이 모두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제등 위에 구체와 십자가를 올려놓아야 비로소 완성된다.
이 일이 베로키오에게 주어졌다. 그는 쇠로 제작했는데 폭이 6m에 높이가 107m로 무게가 2톤에 이르렀다.
이것을 제등 위에 올려놓은 후에야 대성당은 완공되었다.
1471년 5월 27일 모든 피렌체 사람들이 구체와 십자가를 높이 얼려 제등 위에 세우는 것을 바라보았다.
이튿날 오후 3시 트럼펫의 팡파르가 울려퍼졌고 역사학자들은 이 날을 기념했다.
레오나르도는 베로키오의 작업장에 들어가자마자 공학부터 배우게 되었고 이 날 예술가이면서 공학가의 작품이 영광을 받는 것을 목격했을 것이다.
베로키오의 작업장에서 수학한 사람은 물론 레오나르도 한 사람뿐이 아니었다.
페루지노, 로렌초 디 크레디, 보티첼리, 그리고 1450년을 전후해서 태어난 예술가들이 그로부터 수학했으며 기를란다요와 루카 시그노렐리도 그로부터 수학한 것 같다.
작가 우골리노 베리노Ugolino Verino는 1490년에 "베로키오의 제자들 거의 모두가 지금 이탈리아 도시들에서 활약하고 있다"고 적었다.
레오나르도가 베로키오의 작업장에 들어갔을 때 그곳은 마치 피렌체 젊은 예술가들의 회합장소와도 같았을 것이다.
바사리에 의하면 베로키오는 음악가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레오나르도를 포함해서 젊은 예술가들은 그로부터 음악도 배웠을 것이다.
산드로 보티첼리는 레오나르도보다 일곱 살 혹은 여덟 살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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