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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고갱과 슬픈 고흐 1
김광우 지음 / 미술문화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성난 고갱과 슬픈 고흐> 중에서
아름다움은 쓸모가 있어야 합니다
제8회이자 마지막 인상주의 그룹전에서 호평을 받은 고갱은 고무되어 좀더 회화에 열중할 계획으로 1886년 7월 중순 대서양이 바라보이는 브르타뉴의 작은 항구 퐁타방으로 갔습니다.
조그만 항구 마을 퐁타방은 매우 원시적인 곳으로 인구가 1,516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퐁타방에서는 농업, 제분업, 어업 등이 소규모로 이뤄졌으며 1860년대 이후 경제적 수입은 그 지역을 찾는 관광객이나 작가들의 숙식 제공에 의존했습니다.
고갱은 캥페를레 인근의 촌락이면서 바다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지지 않은 ‘퐁타방의 여행자집’으로 알려진 메종 글로아느 여인숙에 묵었는데,
그곳은 예술가들이 즐겨 묵던 곳으로 보나의 제자 샤를 라발도 묵고 있었습니다.
에밀 베르나르와 메이어 드 한을 만난 것도 이 여인숙에서였으며 나중에 그는 그곳으로 여행 온 폴 세뤼지에도 만났습니다.
생활비가 적게 드는 곳이라서 약 20년 전부터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예술가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고 있었습니다.
여행자들을 위해 이 지역에서 발행한 안내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습니다.
퐁타방에는 브르타뉴의 어떤 마을보다 유리한 조건이 있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개성있는 전통의상을 고수하므로 화가들의 모델을 하면서 재미를 느끼고 또 부수입이 생겨 아주 좋아합니다.
고갱은 파리에서와 달리 가난을 절실히 느끼지 않아도 되는 퐁타방을 고향처럼 여길 수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그에게서 ‘종합’이란 말이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종합이란 자연을 덜 모방하는 걸 의미했습니다.
종합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추상과 같은 의미이며 사물을 덜 모방하는 데서 추상이란 개념이 생긴 것입니다.
종합이란 그의 말에는 사물의 형태를 축소시키는 기교와 밝은색을 사용하여 사물을 단순하게 정렬시킨다는 뜻도 내포되었습니다.
그는 퐁타방에서 인물과 풍경을 주로 그리면서 피사로, 세잔, 드가로부터 익힌 화법들을 두루 응용해 독창적인 기법을 찾아내려고 했습니다.
새로운 형식과 기법을 발견하지 못하면 화가로서 성공할 수 없음을 이미 경험한 그로서는 스스로에게 혹독한 훈련을 가해야 했습니다.
그는 <브르통의 네 소녀>를 그리고 이 작품을 위한 습작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1880년대 브르통 소녀들이 이런 전통의상을 늘 입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소녀들에게 돈을 주고 전통의상을 입고 모델이 되게 한 것입니다.
10월 중순 파리로 돌아온 고갱은 자신과 클로비의 생계를 위해 도예가 에르네 샤플레와 함께 도자기를 제작했습니다.
퐁타방으로 가기 전에 판화가 펠릭스 브라크몽을 통해 알게 된 샤플레는 일본 도자기의 영향을 받아 도예를 되살리는 일에 전념한 유명한 도예가였습니다.
파리에서 이미 도자기를 제작하던 고갱은 샤플레를 만나자 더욱 도자기에 관심이 커졌습니다.
그는 어렸을 적 페루를 점령하기 전 원주민들이 제작해 사용한 원시주의 조각들로부터 영감을 받았는데 그것을 바탕으로 원시주의 요소가 두드러진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도자기를 장식하면서 불에 구울 때 색이 섞이지 않도록 인물과 사물의 윤곽에 선을 그려넣었고 형상을 가능하면 단순화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원시주의 도자기가 파리 사람들에게 낯설음과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자신했습니다.
그는 에나멜로 광택이 나도록 장식했고, 또 가장자리를 다른 색으로 테를 둘러 장식적인 느낌이 나도록 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실용성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아름다움은 쓸모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도기 화병에는 전통의상을 한 퐁타방 처녀의 모습도 있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도자기를 미술품으로 취급하기를 꺼려하자 고갱은 이에 대해 항변했습니다.
도자기를 빚는 것은 한가로운 여흥이 아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도자기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늘 아꼈던 물건이다.
신은 한 줌 흙을 빚어 인간을 창조했다.
한 줌 흙으로 우리는 귀중한 돌을 만들 수 있다.
한 줌의 흙과 한 줌의 재주로 말이다!
고갱이 제작한 많은 단지들은 전통적인 소박한 모델이고 그 외의 것들은 환상적이며 손잡이가 크고 장식적이었습니다.
공통점이 없이 다양한 형상을 한 이런 단지들은 페루의 전통단지를 상기하게 하지만 아름다움은 쓸모가 있어야 한다는 실용성을 늘 염두에 두고 제작한 것들입니다.
그의 스케치북에는 페루·멕시코·로마 양식의 단지들이 많이 그려져 있어 그가 다양한 이국적 단지에 관심이 많았음을 알게 해줍니다.
또한 드가의 작품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파리 오페라에서나 볼 수 있는 우아한 댄서들을 장식해 사변적으로 부조화의 미를 추구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