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러에게 미적 가상이란
칸트가 미를 주관적이라고 했지만 실러는 주관적이면서 또한 객관적임을 역설했다.
실러는 미가 인간의 지각과 행위 내에서 그 자체를 드러내는가 하는 문제에 집착하여 미적 가상의 개념과 유희 충동의 개념을 고안해냈다.
보상케는 그가 칸트의 근본적인 단순한 형상 안에서의 실천적인 목적에 대조되는 쾌의 특징들을 받아들인 채 그것들로부터 문명의 성장과 관련이 있는 중요한 결과들을 끌어내려고 시도했다고 보았다.
실러에게 미적 가상asthetischer Schein이란 정직으로서 유사 그 이상의 허위를 꾸미지는 않으며, 독자적이어서 모조의 오브제의 진정한 존재를 통해 쾌한 것들을 증대시킬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따라서 미적 가상은 감각적이든 논리적이든 속임수와는 그리고 실재와 관련 있는 식욕을 증진시키는 것들이나 실천적인 것들과는 단번에 구분된다.
인류학적 관점으로부터 가상에 대한 관심의 점진적 성장 그리고 나타낸 미와 분명히 관련된 모든 어려움들이 진정으로 가상의 비현실이 아니라 그것의 ‘정직’ - 그것의 명백한 비현실 - 에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부터 부상하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에 의해, 보상케에 의하면, 실러는 칸트가 소유한 자연적 그리고 예술적 미에 관한 비교적 가치보다는 좀 더 참에 가까운 개념 그리고 개화된 삶에 있어서 아름다운 것들에 의해 차지된 자리를 위한 명확한 정당화를 위한 길을 닦았다.
그의 역설인 인간이 (평범한 실천적) 실재의 것들 그 이상에서 가상의 것들에 가치를 매기는 것을 배우는 데서 오직 비례하여 개화된다는 주장은 플라톤이 취한 이론을 놀랄만하게 반전시킨 것이었으며, 칸트 이후 미학의 성찰에 영향을 끼쳤다.
미적 가상과 마찬가지로 실러는 유희 충동의 개념 또한 칸트의 수사적인 논리로부터 구했다.
칸트가 ‘유희’라는 말을 미적 판단을 구성하게 하는 조화 안에서 능력들의 자유로운 행동을 가리키는 말로 계속해서 사용한 데서 실러가 유희 충동이란 개념을 고안했는데 이는 간단히 말해서 탈출구를 요구하는 축적된 에너지의 방출을 뜻한다.
그는 “동물은 … 생의 여분이 자체를 행위 속으로 이식할 때 유희한다”고 했다.
이를 인간에게 적용하면 그 자체를 위한 바라보는 쾌를 자각할 때 유희 충동이 생긴다.
보상케는 그러므로 실러가 ‘형상’이나 ‘가상’이란 말을 사용할 때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모방에 의한 그것에 자립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44-2)
실러는 충동을 순수한 이상적 행위로 보았는데 그는 <서한 26>에 적었다.
인간이 눈을 통해서 쾌를 받아들이기 시작하자마자 그리고 자신을 위한 하나의 독자적 가치를 획득한 것을 바라볼 때 그는 미적으로 자유롭게 되고, 유희 충동을 깨닫게 된다.
실러는 <서한 15>에서 매사에 있어서 유희 충동과 모방적 혹은 드라마적 경향(흉내나 가상을 즐기는 경향)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모든 게임과 오락에는 어떤 삶의 흉내가 관련되어 있는 것이 사실인양 보인다고 했다.
유희 충동론은 미에 있어 사회적 관심과의 관련 속에서의 칸트가 제시한 개념들에 의존한 예술의 사회적 성격 그리고 미적 느낌의 본질적 전달성에 대한 분석으로 진전되었다.
그는 <서한 27>에서 말했다.
우리가 감각적인 것들 혹은 지성적 쾌들을 보편화할 수 없는 이유는 전자는 본질적으로 개별적이고 후자는 개성의 깊게 자리 잡은 기반들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미에서만이 우리는 개별적이면서 동시에 인종적이다. 미가 모든 세계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고, 모든 존재가 아름다운 것들의 마력 아래 있는 동안 그것의 한계들을 망각한다.
보상케는 미에 관한 유희론의 결점을 일과 유희 둘 안에서 인생을 자르려는 경향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와 유희 충동 사이의 두 진정한 고리는 실천적 종말들로부터의 그것들의 보통 자유이며, 흉내로의 그것들의 보통 경향 혹은 커다란 의미에서 실재에 대한 이상적 취급으로 보았다.
달리 말하면 유희가 우리에게 오락과 우리의 능력의 완화를 시사하며, 자아 발표력의 진지한 요구나 숙련공에게 어떤 자유도 없는 가운데 모든 일에 관련된 표현적 요소에 공평하게 평하지 않는 양 보인다는 것이다.
유희 충동은 한 마디로 그것의 근본적으로 부정적 자유가 상상적 표현을 요구하는 하나의 내용과 더불어 충전되었을 때만 오직 미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같은 형상을 취하는 어떤 충동이라도 그것이 어쩌다가 우리에게 유희를 상기하게 하든 안 하든 미적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칸트를 추종한 실러는 미의 객관성을 확신했을 뿐만 아니라 개화된 인간의 진화 안에서 그것의 위치와 가치의 정당함을 입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