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의 수입
 

  예술가들의 수입


미술품의 질에 관해 말하면 르네상스 초기만 해도 수공업적 작업을 한다고 해서 예술가의 품위가 떨어지는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산드로 보티첼리, 필리포 리피, 피에로 디 코지모 등은 16세기에 들어서서도 가구에 그림을 장식하는 화가들로 유명했다.
작업의 질로 예술가를 판단하기 시작한 것은 미켈란젤로에 와서였다.
조르조 바사리는 수공업적 일감을 받는 것이 더이상 예술가의 자존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런 견해가 받아들여진 것은 길드에 대한 예술가들의 관계가 종말을 고하는 걸 의미했다.
조반니 바티스타 포지가 길드에 의해 규정된 칠 년 동안의 견습기간을 모두 채우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노바에서 화가로 활동하는 행위를 금지하려는 소송을 화가조합에 의해 제기되었는데, 이는 예술가와 조합 사이의 변화하는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예술가들의 경제적 상황으로 말하면 소시민적 상공인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귀족과 같은 화려한 생활을 누릴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비참한 생활을 한 것은 아니었다.
예술가들에 대한 보수가 형편 없는 것만은 아니었지만 가난한 예술가들이 많았던 건 사실이었다.
마사초는 조수들에게 월급을 줄 수 없을 정도였으며 세상을 떠날 당시 빈곤했고 빚에 쪼들렸다.
바사리에 의하면 리피는 양말 한 켤레도 살 형편이 못되었고 파올로 우첼로는 노령에 이르러서 가진 재산도 없었으며 일도 할 수 없었고 집에는 병든 아내가 있어 탄식했다.
그러나 궁정이나 후원자들로부터 주문을 받은 예술가들은 생활이 나았으며 프라 안젤리코는 교황청으로부터 매달 15두카트를 받았는데, 당시 피렌체에서는 년수입 300두카트면 귀족처럼 호화스럽게 살 수 있었다.
당시 특색 중 하나는 유명한 예술가가 평범한 예술가에 비해 돈을 훨씬 더 많이 받은 건 아니란 점이다.
도나텔로와 같은 명망 있는 예술가들은 좀더 많은 보수를 받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인기작가에 대한 엄청난 보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작품을 주문한 사람과 예술가의 관계는 물주와 노동자의 관계인 노사관계였다.
예술가들은 작업하는 동안 돈을 분할해 받아야 했으며 주문한 사람도 재료비를 여러 차례에 걸쳐 분할해 지불했다.
왕후, 군주들까지도 현금이 없어 쩔쩔매는 경우가 있었으며 레오나르도는 후원자 로도비코로부터 보수를 다 받지 못해 여러 차례 불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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