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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는 한동안 레오나르도가 소장하고 있었는데, 프란체스코는 아내의 그러한 웃는 모습을 벽에 걸어놓고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없어 구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레오나르도는 이 초상화에 제목을 붙이지 않았으며 이탈리아어로 <라 조콘다 La Gioconda>로 알려졌다.
여러 해가 지난 후 프랑스 왕 프란체스코 1세가 4천 크라운(5만 달러)을 주고 구입하여 자신의 퐁텐블루 궁전에 걸었다.
이 초상화는 프랑스어로 <라 조콘드 La Joconde>로 불리었고 영어로는 <모나리자 Mona Lisa>로 알려졌다.
몬나 리자에 관한 이야기는 바사리가 <미술가 열전>에 남긴 기록을 통해서이지만 그는 생전에 이 작품을 본 적이 없다.
그가 <미술가 열전>을 쓸 때 이 작품은 프랑스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이에 관한 바사리의 기록에 신빙성을 두지 않는다.
이 작품의 주인공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며 로렌초의 아들 줄리아노 데 메디치가 좋아한 여인이란 설이 유력하다.
레오나르도가 프랑스에서 타계하기 몇 달 전 아라공의 추기경이 그림의 여인을 피렌체에서 보았다면서 줄리아노의 여인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여인의 이름은 파시피카 브란다노가 된다.
그 밖에도 이 여인에 관한 설이 분분해서 이제 누가 과연 실제 인물인지 밝히기란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심지어는 그림의 주인공은 남자이며 레오나르도의 자화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여전히 <모나리자>로 불리우고 있다.
바사리는 이 그림을 주문한 사람이 구입하지 않은 이유로 4년 동안 그렸지만 미완성이었기 때문이라고 적었지만 오늘날 루브르 뮤지엄에 있는 이 작품을 보고 미완성이라고 판단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바사리의 말대로 당시 그것이 미완성이었다면 레오나르도는 이것을 갖고 프랑스로 가서 그곳에서 완성시켰을 것이다.
만약 그림의 주인공이 줄리아노의 애인이었다면 줄리아노가 1515년 필리베르타와 결혼했기 때문에 애인의 초상화를 집에 걸 수 없었을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줄리아노가 레오나르도에게 <누드 모나리자 Nude Mona Lisa>를 주문했다고 말한다.
이 작품에 대한 복제는 여러 점 있다.
레오나르도의 작품들이 수난을 겪었듯이 <모나리자>도 수세기 동안 수난을 겪었다.
패널 양쪽 7cm가량이 잘려나갔다.
그리고 그림 위에 덧칠한 적이 있다.
얼굴 부분에는 연한 황록색 유약이 칠해졌다.
<모나리자>는 서양사람들의 가장 사랑받는 작품이 되었고 많은 예술가들이 이를 모티프로 갖가지 작품을 제작함으로써 레오나르도에게 존경심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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