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의 <지옥>
<지옥> 패널화의 배경은 밤의 장면이며 자연을 배경으로 하지 않고 인간이 창조한 문명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이 특기할 만하다.
도시는 전쟁에 의해 파괴되었고, 사람들은 완전히 만취된 상태이며, 여기저기에서 가학행위가 자행되고 있고, 심지어 악기조차 인간을 고문하는 형틀의 기구로 사용되고 있다.
사람들은 악마의 유혹에 압도되었다.
보스는 엉망진창이 된 세계를 보여주면서 쾌락의 추구가 고통의 응보가 되고 있음을 묘사했다.
그는 인류의 손에 의해 세상이 지옥화되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옥의 왕자는 머리에 큰 냄비를 쓰고 있는데 냄비는 지구를 상징한다.
냄비 위 과부의 모습은 빠져나갈 출구가 없음을 의미한다.
하단에 도박으로 돈을 다 날린 사람의 손이 술집 테이블에 칼로 찔린 채 박혀 있다.
그의 몸을 새처럼 생긴 괴물이 누르고 있으며 괴물의 등에는 방패가 있고 방패에는 잘린 손이 칼에 찔린 채 있으며 위로 향한 두 손가락 위에는 도박에 사용된 주사위가 얹혀져 있다.
바닥에는 트럼프 패가 널려 있는데 사내의 모든 걸 잃게 만든 패이다.
<지옥>은 밤과 같이 어둡고 냉냉하다.
물은 꽁꽁 얼어붙었다.
하단에는 토끼가 피를 흘리는 저주받은 사람을 막대기에 매달고 운반한다.
저주받은 사람은 사냥꾼인 듯 하며 사냥감인 토끼가 오히려 사냥꾼을 포획했다.
지옥의 혼란을 말해준다.
인간세계에서 고통을 준 가해자는 지옥에서 피해자들에 의해 그 이상의 고통을 응보로 받게 된다.
일상적인 사물들이 지옥에서는 가혹한 고문도구가 된다.
쾌락을 상징하는 음악은 사라지고 류트와 하프는 죄인들을 매다는 형틀이 된다.
음악에 취해 사리분별을 하지 못한 자들은 괴롭히는 도구가 된 악기에 의해 가혹한 벌을 받는다.
목관악기와 타악기가 있고 그것들 뒤로 사람들은 류트 아래 엎어져 있는 사람의 응덩이에 적힌 악보를 보고 합창을 하듯 제각기 악을 지른다.
엉덩이는 육욕을 상징한다.
악기는 나무처럼 생긴 지옥의 왕자 머리 위에도 있다.
핑크색의 백파이프는 성적 상징이며 마귀와 인간이 함께 댄스곡을 연주한다.
뒤로 거대한 크기의 두 귀가 있고 귀 사이에 나이프가 있다.
귀는 위협적인 경고의 상징일 뿐 아니라 음악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벌을 의미한다. 얼어붙은 호수에는 유난히 큰 스케이트를 타다 빠진 사람의 허우적대는 모습이 보이고 옆에 마찬가지로 커다란 스케이트를 타고 균형을 겨우 잡은 남자가 물구덩이로 향하는 모습이 보인다.
뒤에 스케이트 타는 사람이 보이는데, ‘스케이트타기’란 말은 옛 네덜란드인에게 위험한 상황을 의미했다.
중앙 왼쪽 끝에는 열쇄고리에 몸이 끼어 늘어진 자가 있고 뒤로는 거대한 한쌍의 귀가 지옥 군대 전차처럼 돌진하면서 앞에 매단 커다란 칼로 저주받은 자들을 해친다.
이 칼에는 보스의 다른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M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를 두고 보스가 특히 싫어한 칼 장인의 직인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고 중세 예언자들이 M으로 시작되는 이름의 적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지옥> 중앙에 커다랗게 그려진 ‘나무인간 Tree-Man’은 <천국>에서의 ‘생명의 샘’과 대조가 되는 모티프이다.
보스는 나무인간을 따로 드로잉했으며 현재 베니스의 알베르티나에 소장되어 있다.
그러나 드로잉에서는 지옥을 가리키는 어떤 요소도 보이지 않아 <지상 쾌락의 동산> 오른쪽 날개를 그리기 위해 그린 드로잉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보스는 나무인간을 지옥을 가리키는 새로운 도상으로 사용했다.
많은 학자들이 나무인간의 얼굴을 보스의 자화상으로 본다.
야릇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의 얼굴은 깡마르고 머리카락은 은색이 도는 갈색이다.
이런 그의 모습은 중앙 패널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관람자를 바라보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