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의 여건을 마련한 세 시인
 

 

르네상스의 여건을 마련한 세 시인
 

 

서로마제국이 476년 몰락한 후 그리스 문화는 약 천 년 동안 거의 잊혀졌으며 중세에는 카톨릭 신학, 철학, 연대기, 동화 등이 있었을 뿐이다.
천 년 암흑시대로 알려진 이 시기에 로마를 근거로 하는 카톨릭의 세력이 유럽을 지배했으므로 기독교 문화만 두드러졌을 뿐 이국의 종교문화는 이단으로 몰려 발전을 꾀할 수 없었다.
교황 보니파티우스 8세Bonifatius VIII가 1303년에 타계하자 교권은 더욱 더 쇠퇴하기 시작했는데, 보니파티우스는 여든 살에 교황직에 올랐는데,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인 그는 프랑스 왕 필립 4세와 극렬한 투쟁을 벌였으며 역대 교황들 가운데 가장 큰 과오를 범한 인물이 되었다.
그가 타계했을 때 사람들은 "그는 여우 같이 되어 사자 같이 정치를 하다 개 같이 죽었다"고 했다.
그는 신의 심판이란 있을 수 없으며 지옥과 천국은 지상에 있다고 공언했다.
그는 성적으로 탐익되어 있었으며 늙고 병들고 성적 불능이 지옥이며 반대로 젊고 건강하며 아름다운 여인과 소년이 천국이라고 했다.
어느 신부가 그리스도에게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올리자 보니파티우스는 그에게 성을 내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 천치야, 예수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자기 생명도 구원하지 못한 자가 누구를 구한다고 생각하느냐?"
그는 냉소주의자였으며, 정력적이었고, 권력을 휘둘렀으며, 내세에는 무관심한 르네상스 스타일의 전형적인 인물이었다.
지식인들은 수도원에서의 금욕주의적 생활과 현세를 무시하고 경멸하면서 현재 인생의 권리를 주장하고 인간의 보편적 권리를 주장했다.
교회의 위선에 대한 지식인들의 증오가 르네상스의 가장 큰 정신적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르네상스의 여건은 13~14세기의 선구자 단테Dante(1265~1321), 페트라르카Petrarca(1304~74), 보카치오Boccachio(1313~75) 세 시인에 의해 마련되었다.
이들 3대 시인들 중 단테는 르네상스의 가장 큰 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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