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풍경화
 

  (이 글은 얼마 전 출간된 <자연과 삶, 손장섭>에 소개된 글입니다.
손장섭 씨의 청탁을 받아 여러 편의 글을 실었는데 이것은 일부분입니다.)

장르풍경화

성기 르네상스 이전까지만 해도 풍경화는 존재하지 않았다.
풍경은 인물을 그리는 데 필요한 배경에 불과했으므로 화가들은 풍경의 원근이나 독특한 분위기에 관해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자연을 화면 구성상의 요소로 삼았을 뿐 자연 자체를 관조하여 주제로 삼지는 않았다.

서양 미술에서의 최초 풍경화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이 이름은 빈치 동네사람 레오나르도란 뜻인데 빈치가 그의 성이 되었다)가 그린 것이다.
그는 어린 시절을 보낸 빈치의 언덕에서 내려다본 장면을 몇 점 남겼는데 펜으로 풍경을 드로잉할 때 그의 나이 스물한 살이었다.
풍경화는 그에게 특별한 드로잉으로 1473년 8월 5일이라는 정확한 날짜를 명기했다.
이후 풍경은 회화의 고유한 장르로 자리를 잡았다.
낭만주의 시대에 와서 풍경은 매우 정감 있는 장면으로 묘사되었고 영국의 존 컨스터블과 프랑스의 카미유 코로의 풍경화가 유명하다.
프랑수아 밀레도 말년에 가세한 바르비종파의 풍경화는 이 장르에 획을 그었다.
풍경화가 주요 장르가 된 것은 이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 화가들에게 자연은 신기를 지닌 실체였다.
에밀 놀데의 풍경화에는 자연에 대한 그의 신앙이 깊숙히 배어 있어 풍경에 찬송의 곡을 붙였다는 느낌이다.
모네를 중심으로 한 인상주의 화가들의 풍경화는 이 장르를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했다.
자연의 일시적 변화마저 놓치지 않겠다는 의욕으로 풍경의 변화무쌍한 다양함을 선보인 것이다.
풍경에 대한 모네의 집착은 거의 실명에 이르게 했다.
빛에 의한 대기의 변화까지도 화폭에 담는 것이 인상주의 화가들의 몫이었다.

이렇듯 20세기 초반까지 풍경화는 회화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장르로 자리매김되었다.
1차세계대전과 더불어 서양미술은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수많은 사람을 살상하는 전쟁의 비극에 분노한 예술가들이 이성에 혐오를 느끼고 소위 다다dada로 불리우는 예술의 허무주의를 구가했다.
예술가들은 모든 전통을 전복시키는 일에 예술의 목적을 둘 정도였다.
반이성주의 예술가들은 1930년대에 세계적 경제공황과 더불어서 공산주의라는 이념의 문제에 봉착했으며 여기에 인종주의와 국수주의를 맞아 현실도피가 대대적으로 행해졌는데 이것이 그럴싸한 말로 초현실주의인 것이다.
의식세계의 한계에 봉착한 예술가들은 그동안 억눌려온 무의식세계에서 자조적인 행위를 한 것이다.
여기에는 무의식세계의 빗장을 푼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역할이 컸다.
그의 저서 <꿈의 해석>은 1900년에 이미 서점에 진열되어 있었고 예술가들은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가능하지도 않은 일에 매달렸다.

이런 추이는 2차세계대전 후에도 지속되었다.
전후의 가장 두드러진 미술운동은 추상표현주의였는데 이 운동은 외부세계보다는 내면세계에 대한 탐험으로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직접 받았다.
무의식이 창작의 동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추상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에는 공통점이 있지만 허무맹랑한 방법으로의 현실도피와는 달리 추상표현주의는 의식의 과정과 분출을 행위적으로 강조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2차세계대전에서 승리한 미국은 정치적으로 세계를 움직이는 강력한 국가가 되었고 경제에서도 최대 소비국가가 되었다.
1960년대에 성행한 팝아트는 바로 이 소비주의에 뿌리를 둔 미술운동이다.
유럽에서는 이를 신사실주의란 말로 불렀는데 미국과 유럽의 예술가들은 소비의 즐거움을 만끽하면서 대량생산으로 나아간 서구 물질문명을 자축했다.

하지만 이런 자축은 잠시뿐이었다.
물질과 대상에서 출발한 미술은 1970년대에 추진력을 상실했는데 화가 자신의 정신문제가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미니멀리즘과 개념주의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화가들은 더이상 대상을 찾지 않고 철학과 논리에 매달렸다.
이런 성찰을 근거로 1980년대에 미술에 대한 모든 편견이 사라졌는데 이를 다원주의라고 한다.
회화의 경우 장르와 양식은 더이상 우열을 가리는 수단이 되지 못했다.
모든 장르와 양식이 동등하게 취급된 것이다.
장르와 양식으로 우열을 가리던 모더니즘이 한계에 다달아 소위 말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가 개시된 것이다.

이제 화가들은 매우 자유로워졌다.
창작의 폭이 아주 커진 것이다.
아직도 장르나 양식을 트집잡는 평론가가 있다면 그는 자격미달이므로 평론에서 속히 떠나야 한다.
화가는 어떤 장르라도 선택할 수 있고 어떤 양식으로 그려도 무방하다.
오히려 장르와 양식에서 자유로운 것이 바람직하다.
재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과거에는 미술적 재료란 것이 따로 있었고 장르에 걸맞는 재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당위성만 증명할 수 있다면 모든 재료가 미술적 재료가 된다.
교과서적인 재료나 기법에 있어 마땅히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을 적절하게 해줄 수만 있다면 재료와 기법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말이다.
모든 것이 결과를 위한 것이 된다.
무엇으로 그렸느냐 혹은 어떻게 그렸느냐 하는 질문은 호기심을 총족시키는 질문이 되지만 작품에 대한 평가와는 무관하다.
우리는 무엇을 표현했느냐 혹은 어떻게 표현했느냐 하고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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