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와 사랑의 동산
중세 ‘사랑의 동산 Garden of Love’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13세기의 장편 은유의 시 『장미의 로맨스 Romance of the Rose』이다.
이것은 네덜란드어를 포함하여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되었으며 문학과 예술에 있어 많은 모작을 낳게 했다.
이런 주제의 작품은 보스 당대에도 태피스트리와 엔그레이빙으로 제작되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이런 작품에서는 아름다운 꽃이 만발하고 새가 노래하며 연인들이 연못 주변을 거닐거나 노래하는 것이 보통이다.
보스는 유행하던 이런 작품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연인들이 은밀하게 사랑을 나누는 행위와 물의 연관성은 보스 당대에 보편적 표현이었다.
<월별 노동 labours of the months> 시리즈에는 사랑의 시기인 5월을 물통 안에서 연인들이 서로 끌어안는 장면으로 표현되었다.
<젊음의 샘 (혹은 풀) the Fountain (or Pool) of Youth>도 에로틱하게 묘사되었다.
<지상 쾌락의 동산>에는 ‘사랑의 동산’과 ‘비너스의 욕장 Bath of Venus’과도 같은 주제가 있다.
원경의 호수를 자세히 보면 남자와 여자들이 한데 어울려 놀고 있지만 중간 연못에서는 성별이 구분되어 원형의 연못에는 여자뿐이고 남자는 다양한 형상의 동물들을 타고 주변을 맴돈다.
남자들이 동물 등에서 곡예를 부리는 것은 여자들을 보고 흥분했기 때문이다.
남성과 여성이 서로에게 성적 호기심을 갖게 되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이런 장면을 화면 중앙에 삽입한 데서 그가 주제를 극명하게 드러내려고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경우 중세 도덕주의자들은 아담과 이브의 선례에서와 같이 색욕을 먼저 자극하는 것을 여성으로 보았다. 15세기 말 이스라헬 반 메케넴의 엔그레이빙에는 젊은 처녀의 주변을 격렬한 몸짓을 하며 맴도는 남자들이 있다.
이는 전통으로 내려온 ‘모리스 춤 Morris Dance’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15세기 필사본 『신국』에는 고대 로마의 음탕한 관습에 대한 비판을 동산에서 누드로 춤 추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묘사했다.
<지상 쾌락의 동산>이 인간의 어리석은 자들 혹은 무지한 자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서 그려졌다는 점에서 앞서 언급한 <바보들의 배>, <수전노의 죽음>, <건초 수레>와 일맥상통한다.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지상 쾌락의 동산>은 아름답게 나타났기 때문에 색욕을 죽을 죄로 고발하는 작품이라고 말하기 어렵게 보이지만 중세 사람들은 물질적·육체적 아름다움을 우리와 같은 시각으로 보지 않고 탐욕의 대상으로 보았다.
가장 아름답고 매력적이며 유혹적인 것들 이면에는 죄가 있다고 보았다.
이런 예를 보스 당대에 유행한 상아로 제작된 작은 조각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앞면에는 포옹하는 한쌍의 연인이 관능적인 여성 누드상으로 나타나 있지만 뒤에는 부패된 시체의 상이 새겨져 있다.
<지상 쾌락의 동산>을 통해서 보스는 우리에게 이것이 낙원이 아니라 일시적인 아름다움으로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거짓된 낙원임을 깨닫게 해주려고 한다.
이는 중세 문학에서도 널리 사용된 주제였다.
그는 신실한 크리스천이었고 기독교에 바탕을 둔 도덕주의자였음을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다.
세쪽 제단화를 닫을 경우 구약성서 창세기 천지창조가 묘사되어 있다.
닫힌 세쪽 제단화는 세상이 열리기 전을 상징한다.
여기에는 컬러가 없다.
해와 달이 창조되기 전이라서 지상에 아직 빛이 내리기 전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보스의 창작이 아니라 전통이다.
인류가 지상에 생기고 번성하기 이전의 우주를 묘사하려고 한 점이 특기할 만하다.
<천지창조 Creation of the World>가 회색과 회색-녹색으로 패널에 그려져 있는데,
태초의 첫째, 둘째, 셋째 날을 묘사한 장면이라서 해와 달이 아직 생기기 전이므로 색이 있기 전의 상태이다.
왼쪽 상단 모퉁이에 창조주 하나님이 작게 묘사되었으며 머리에 관을 쓰고 교황처럼 앉아 있다.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를 그리면서 하나님이 몸소 행동으로 천지를 창조했음을 드라마처럼 묘사했지만 보스는 보수적인 신앙을 갖고 있었으므로 성서의 기록대로 말씀으로 창조했음을 묘사했다.
하나님은 옥좌에 앉아 왼손으로 성서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상단에 시편 33장 9절이 적혀 있다.
말씀 한 마디에 모든 것이 생기고
한 마디 명령에 제자리를 굳혔다.
For he spake and it was done;
he commanded and it stood fast.
이는 보스 자신이 이해하는 우주론이면서 그림의 모티프이기도 하다.
그는 9절만 적어넣었지만 시편 33편 6~7절을 관람자가 알고 있을 것으로 인식했을 것이다.
야훼의 말씀으로 하늘이 펼쳐지고,
그의 입김으로 별들이 돋아났다.
바닷물을 독에 담으시고
깊은 땅 속 창고에 넣어 두셨다.
보스는 시편의 저자와 같이 이렇게 말하고자 한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생겨났으니,
그의 이름 찬양하여라.(시편 14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