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빼로의 『순수예술 일람』
순수예술과 기능술의 구분은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러서야 이루어졌고, 순수예술이란 용어가 확립된 것도 이 시대였다.
순수예술이란 용어가 16세기에 프란체스코 다 홀란다F. da Hollanda에 의해 사용된 적이 있었지만 17세기에 좀더 보편화되었고, 이 용어가 책의 제목으로 등장한 것은 1690년에 출간된 샤를 빼로Charles Perrault(1628-1703)의 『순수예술 일람 Cabinet des beaux arts』에서였다.
그러나 순수예술 전부가 열거된 것은 1747년에 출간된 바뙤C. Batteux(1713-80)의 『동일한 한 가지 원리로 귀결되는 순수예술들』에서였다.
바뙤가 순수예술로 구분한 것은 다섯 가지 음악, 시, 회화, 조각, 무용(동작예술l’art du geste)이었다.
바뙤는 이것들이 자연을 모방한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즐겁게 해주기도 한다는 공통된 목적 속에서 이들의 특수성을 찾았다.
그는 예술을 즐거움을 제공하는 순수예술과 실용성이 있는 기능술로 나누면서 여기에 즐거움과 실용성 모두를 특징으로 하는 중간적인 제3의 예술을 추가했는데 건축과 수사법이었다.
시와 회화 간의 상호접근은 저 유명한 호라티우스Horace(65-8 BC)의 “시는 그림과 같이 ut pictura poests”로 인해 가속되었다.
그의 구호는 16~17세기에 때에 따라서는 거꾸로 “그림은 시처럼 ut poesis pictura”으로 되기도 했는데 이는 시적인 특질, 즉 시와의 근사성이 회화와 같은 예술을 공예와 구분 짓는 요인이라는 확신을 표현한 것이다.
프랑스어로 된 『대백과사전 Great Encyclopaedia』의 제1권이 출간된 1751년에도 예술 분류의 문제는 여전히 애매한 상태로 남아 있었으며, 디드로는 백과사전의 ‘예술’에 관한 항목에서 교양예술과 기능술로 나누는 옛 분류를 계속했다.
그러나 같은 해 달랑베르Jean Le Rond D’Alembert(1717-83)는 백과사전의 서문에서 회화, 조각, 건축, 음악과 시를 열거하면서 순수예술beaux arts(혹은 beautiful arts)라는 용어를 이미 사용했다.
보자르라는 프랑스어는 이탈리아어, 독일어, 폴란드어와 같은 다른 언어로 번역되었다.
영어로는 해리스J. Harris(1709-80)가 『세 개의 논문 Three Treatises』(1744)에서 사용한 ‘우아한 예술 elegant arts’ 혹은 ‘품위 있는 예술 polite arts’로 불리어졌으나 결국에는 순수예술로 통용되었다.
순수예술로 바뙤가 구분한 다섯 가지는 그의 창조가 아니라 오래 전부터 준비되었던 상태였고, 그에 의해 구분이 뿌리를 내리고 인정을 받아 그 개념에 있어 급격한 변화를 초래했다.
하지만 그가 제3의 예술로 구분한 건축과 수사법은 순수예술에 포함되었다.
순수fine로 구분된 예술arts들이 참예술로 인정받았고, 예술이란 명칭은 이것들에만 적용되었다.
그래서 예술을 말하는 사람들은 중세의 예술이 기능술에 반대되는 교양예술이었듯이 순수예술을 염두에 두게 되었다.
이는 예술이라는 표현의 의미가 축소된 것을 뜻한다.
예술의 분류는 이제 순수예술의 분류가 되었다.
계몽주의 시대에는 예술의 분류보다는 인간의 모든 제작활동에 대한 분류가 있었는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의 활동을 이론적·실천적·제작적인 것으로 나눈 구분이 복귀된 것이다.
이런 분류는 인식, 행위, 제작의 분류이고, 또한 학문, 도덕, 예술의 분류이다.
영국인이 이미 이렇게 구분했고 독일에서는 칸트가 이런 구분을 발전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