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완전한 분류는 플로티누스에 의해서
그리스인이 말한 테크네의 의미는 오늘날의 순수예술로서의 아트보다는 기술적인 면에 있어서 테크닉technic에 더 가까웠다.
그들에게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의미로서의 아트에 대한 차별성이 없었으므로 조각가의 작업과 목수의 작업을 기술적인 면에서 동일하게 생각했으며, 학문과 기능 모두 예술로 간주했다.
키케로Cicero(106-143 BC)는 『아카데미카 Academica』에서 사물을 파악하기만 하는 것과 사물을 제작하는 것으로 예술을 분류했는데 사물을 파악하기만 하는 것을 우리는 학문으로 간주한다.
고대 그리스인의 예술에 대한 개념이 포괄적이었지만 흥미롭게도 시는 예술에서 제외시켰다.
그 이유는 예술 특성의 결핍인데 시가 법칙에 의해 다스려지지 않고 영감, 즉 개인의 창조에 달린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동양에서 시詩가 절寺에서 나온 말言이듯 서양에서도 시는 사원에서 나왔다.
그리스인은 시를 일종의 예언이나 기도문으로 생각했다.
그리스인은 영감에 음악을 포함시켰는데 광기적 성격의 음악이 시와의 친근성, 즉 시가 노래로 불리어지고 음악은 발음화되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예술 분류법은 실재 대상과의 관계를 근거로 했는데 예를 들면 건축은 사물을 만들어내는 ‘생산적’ 예술로 본 반면 회화는 사물을 모방하는, 즉 이미지만을 만들어내는 ‘모방적’ 예술로 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분류법은 플라톤의 것과 별로 다르지 않았는데 그는 모든 예술을 자연을 보완하는 것과 모방하는 것으로 나누었다.
시에 있어서는 두 사람이 견해를 달리했는데 플라톤은 흥미롭게도 열광으로부터 나오는 시와 문예적 기술에 의한 시 즉 ‘광기적’ 시와 ‘기술적’ 시로 나눠서 후자보다는 오히려 전자를 시로 간주했다.
시를 명확하게 예술로 분류한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였다.
그는 시에 아주 많은 법칙들을 부여한 후 모방예술로 간주하며 “시인은 화가, 그리고 닮은 꼴을 제작하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모방자이다”23)라고 했다.
그리스인이 기능과 학문을 예술의 영역에서 제외시킨 이래 이 같은 인식은 헬레니즘과 중세 그리고 르네상스 때까지 이어졌다.
따라서 순수예술의 개념은 근대에 와서야 확립되었다.
예술에 대한 분류가 고대인에게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널리 인정받은 것은 소피스트들의 분류로 그들은 생활에 필요한 유용성을 추구하는 예술과 향락을 제공해주는 예술로 분류했다.
플루타르크Plutarch(45-125년경)는 여기에 학문을 포함시켰다.
그 밖에도 예술에 대한 분류 시도가 있었는데 누구에 의해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가장 인정받은 분류는 ‘교양 liberal’예술과 ‘범속 vulgar’예술로 라틴어로 아르테스 리베랄레스artes liberales와 아르테스 불가레스artes vulgares로 알려졌다.24)
그리스인은 교양예술을 ‘동문통달 encyclic’예술이라고 불렀다.
오늘날 ‘백과사전적 encyclopedic’이란 의미와 유사한 동문통달은 “하나의 원을 형성한다”는 어원을 갖고 있는데 그리스인은 이 원을 교양 있는 사람이 지녀야 할 예술의 원을 뜻했다.
로마의 수사가 퀸틸리아누스Quintilinus(35-95경)는 예술을 ‘이론적’ 예술, ‘실천적’ 예술, ‘포이에틱 poietic’ 예술이었다.25)
키케로는 주요한 예술artes maximae, 평범한 예술artes mediocres, 사소한 예술artes minores로 분류했다.26)
가장 완전한 분류는 고대 말 플로티누스에 의해서 이루어졌는데 그는 정신성의 정도에 따라 다섯 부류로 구분했다.27)
1 건축과 같이 물리적 사물들을 만들어내는 예술
2 의술 및 농업과 같이 자연을 도와주는 예술
3 화화와 같이 자연을 모방하는 예술
4 수사법 및 정치와 같이 인간의 행동을 개선하거나 장식하는 예술
5 기하학처럼 순수하게 지적인 예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