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움가르텐는 미의 명칭이며 느낌의 표명으로서의
데카르트가 종합과 분석의 수학적인 방법으로 사물의 모습이나 크기를 순수하게 기하학적인 성격으로 파악하려고 한 명백하고도 명증적인 인식방법은 예술의 형이상학을 좀 더 체계화 해주었다.
데카르트의 『철학의 원리들 Principles of Philosophy』과 라이프니츠의 『형이상학에 관한 논문 Discourse on Metaphysics』로부터 영향을 받은 바움가르텐Alexander Gottlieb Baumgarten(1714-62)은 데카르트의 명백하고 모호한 개념들 사이, 구분되고 혼돈된 개념들 사이의 구분방식으로 인식을 상급인식(오성적 인식)과 하급인식(감성적 인식)으로 구분했다.
그는 미의 명칭이며 느낌의 표명으로서의 심미적 지식, 느낌 혹은 감각적 지식의 완전함이 “지성적 지식 속에서 나타났을 때 이를 참”으로 보았다.
보상케Bernard Bosanquet는 이런 완전함의 내용에 대한 그의 분석이 그의 미학의 확신에 적절치 못했음을 『미학사 A History of Aesthetic』에서 지적했다.
보상케는 그의 미학이 낡은 이론들 그 이상으로 진전되지 못했고 플라톤의 사상이 배어있음을 지적했다.
하지만 그가 새로운 동향의 발단이었다고 했다. 보상케는 완전함의 개념은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의 견해에 매우 중요했는데 이 개념이 볼프를 통해 바움가르텐에게 전달되었다고 보았다.18-1)
따라서 완전함은 모든 것이 실재한다는 하나의 선결조건이 되었는데 왜냐면 바움가르텐에게 실재란 많은 조건들을 조화시키는 힘에 의존하기 때문이었다.
볼프는 완전함을 부분과 전체 혹은 다양함 안에서의 통일에 대한 단순한 논리적 관계로 보았는데 이런 견해를 바움가르텐이 받아들였다.
그래서 바움가르텐은 미의 내용을 다양함의 통일 그 이상으로는 간주하지 않았으며, 감각에 의한 지각 속에서의 부분들의 통일인 그 감각적 지식의 완전함에 상반되는 것을 추한 것으로 여겼다.
독일 볼프Wolff 학파를 대표하는 바움가르텐은 미학19)이란 말을 처음 사용하여 미학의 창시자가 되었다.
그는 그리스 로마의 명칭인 cognitio aesthetica, 혹은 줄여서 aesthetica란 명칭을 붙였다.
그는 1750년에 최초의 미학서 『미학 Aesthetica』을 출간했는데 미학을 아름다운 예술론, 저급한 인식형식, 아름다운 사유형식으로 정의했으며, 일반적으로 감성적 지각의 학문으로 규정했다.
그에게 있어 미학의 목표란 감성적 인식의 완성, 즉 미였다.
그의 이론이 수사학과 시학에 근거했음은 그가 자주 인용한 키케로, 폴리니우스, 롱기누스, 퀸틸리아누스 등의 이름들로 알 수 있다.
그가 미술품을 개념적으로 규정하다 보니 오성이 범주에 따라 현상들을 정돈하는 규정적 판단과 감정의 형태 하에서 주체의 능력들 간의 비규정적인 관계와 연관되는 반성적 판단에 혼동을 일으켰다는 비판을 받았다.20)
이 시기에 독일인은 아직도 완전미의 개념을 찾고 있었다.
크리스천 볼프Christian Wolff(1679-1754)는 라이프니츠의 견해를 따라 이런 관점에서 미를 고찰했다.
라이프니츠에 의하면 우주의 존재에서 완전무결함을 발견할 수 있으며, 그 밖의 어떤 가능한 시스템도 덜 완전했다.
이런 관점은 바움가르텐에게 전수되었다. 볼프는 지성적 인식cognittio intellectiva과 감각적 인식cognittio sensitiva을 구별 짓는 고대의 구분을 계속 유지하면서 감각적 인식을 미의 인식과 동일시했다.
그에게 미적 경험이란 하나의 인식이었지만 그것은 완전히 감각적인 것representatio sensitiva이어서 혼돈스러울 만큼 열등한 종류의 인식이었다.
미를 감각적 인식의 완전성으로 관련지운 것은 이내 실책으로 낙인찍혔지만 그와 볼프학파뿐만 아니라 18세기의 많은 이들이 이런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